오만과 편견 vs 센스 앤 센서빌리티, 책 안 읽은 사람의 보고서
두 영화가 똑같아 보였다면 그건 무지가 아니라 정답입니다
먼저 고백부터 하겠습니다.
《오만과 편견》, 책은 안 읽었습니다.
그렇게 유명한 작품인데 이상하게 저와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제목은 너무 많이 들었고, 다아시라는 이름도 알고 있었고, 세기의 로맨스라는 말도 여러 번 봤는데 정작 원작은 펼쳐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 글은 어디까지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영화를 보고 쓴 감상입니다.
미리 방어막부터 치는 것 같아서 조금 민망하지만, 실제로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원작을 몰라서 이걸 못 느끼는 건가?’
왜냐하면 생각보다 별 감흥이 없었거든요.
명작을 만났다는 기분도 아니었고, 세기의 사랑을 봤다는 느낌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습니다.
책으로 읽을걸.
영화가 원작을 궁금하게 만들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성공한 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영화 한 편을 보고 “책이 더 궁금해졌다”고 말하는 게 영화에 대한 칭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조금 애매하죠.
그런데 이 이야기, 어디서 본 것 같았습니다
《오만과 편견》을 보는 동안 계속 다른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시대극이라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가 싶었습니다.
옷도 비슷하고, 결혼 이야기도 나오고, 영국 시골 저택도 나오고, 여자들이 집안 형편 때문에 결혼 문제를 고민하니 얼핏 보면 비슷할 수 있겠죠.
그런데 볼수록 그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이야기의 감촉 자체가 닮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같은 작가였습니다.
제인 오스틴.
《센스 앤 센서빌리티》는 《이성과 감성》을 영화로 만든 것이고, 《오만과 편견》 역시 당연히 같은 작가의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봤습니다.
여기까지는 제 무지입니다.
그런데 알고 나니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같은 작가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비슷해도 되나?
제가 괜히 같은 이야기처럼 느낀 건가 싶어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정말 비슷합니다.
같은 집을 두 번 지은 것처럼 보입니다
두 이야기 모두 결혼이 단순한 연애가 아니라 생계와 직결된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딸들에게 재산이 안정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집안이 있고, 자매들이 있으며, 그 자매들의 성격은 꽤 다릅니다.
한쪽은 비교적 차분하고,
한쪽은 더 감정적이거나 활달합니다.
그리고 매력적인 남자가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꽤 그럴듯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문제가 있습니다.
반대로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거나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던 남자가 뒤늦게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쪽에는 위컴이 있고,
다른 쪽에는 윌러비가 있습니다.
다아시가 있고,
브랜던과 에드워드가 있습니다.
물론 인물 하나하나를 정확히 일대일로 대응시키면 다른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뼈대가 꽤 선명하게 겹칩니다.
저는 이걸 보고 한 작가가 같은 집을 두 번 지은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창문 위치를 바꾸고,
가구를 다르게 놓고,
벽지를 바꿨는데,
막상 들어가 보면 구조는 익숙한 집.
그래서 《오만과 편견》이 더 재미없게 느껴졌던 이유 중 하나는 단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먼저 봤기 때문입니다.
처음 본 집이라면 아름답다고 느꼈을 텐데,
두 번째 들어간 집에서는 자꾸 전에 봤던 방문 위치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사랑보다 돈이 먼저 보였습니다
제가 《오만과 편견》을 보면서 가장 의아했던 부분은 제목이었습니다.
오만.
그리고 편견.
영화가 끝났는데도 저는 사랑 안에서 그 두 단어를 충분히 느끼지 못했습니다.
물론 엘리자베스가 다아시를 오해하고,
다아시는 처음에 자신이 속한 계급과 엘리자베스의 집안을 의식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압니다.
그런데 영화로 볼 때 그 감정이 아주 날카롭게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애틋한 사랑도 기대했던 것만큼 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눈에 더 선명하게 들어온 건 돈이었습니다.
누가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어느 집안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딸들이 왜 좋은 결혼을 해야 하는지.
누가 누구를 얕잡아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경제적 위치가 사람의 태도와 결혼 가능성을 어떻게 바꾸는지.
저는 사랑보다 그게 더 잘 보였습니다.
그래서 순간 조금 걱정했습니다.
‘내가 원작을 안 읽어서 중요한 걸 완전히 잘못 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오만과 편견》 원작의 유명한 첫 문장부터가 돈과 결혼 이야기입니다.
재산을 가진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이 널리 인정되는 진리라는 식으로 시작합니다.
엄청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의 문을 열면서 제일 먼저 꺼내는 게 사랑이 아니라 재산입니다.
이걸 알고 나니 조금 안심했습니다.
제가 엉뚱한 곳만 본 것은 아니었구나.
사랑을 못 보고 돈을 본 게 아니라,
오스틴이 애초에 돈을 한복판에 놔둔 것이었습니다.
책은 안 읽었는데 첫 단추는 얼추 맞힌 셈입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저도 오만해질 수 있겠습니다.
제목과도 잘 맞고요.
문제는 영화가 그걸 너무 예쁘게 덮는다는 겁니다
2005년판 《오만과 편견》은 정말 예쁩니다.
들판도 예쁘고,
저택도 예쁘고,
안개도 예쁘고,
키이라 나이틀리는 당연히 예쁘고,
감정이 고조될 때마다 화면은 거의 작정하고 로맨틱해집니다.
새벽빛 속에서 사람이 걸어오고,
시선이 흔들리고,
손 하나가 스치는 순간에도 감정이 잔뜩 실립니다.
보고 있으면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그 아름다움 때문에 원래 이야기의 독기가 조금 빠진 것처럼 느꼈습니다.
사랑이 너무 앞에 나옵니다.
조 라이트의 《오만과 편견》은 오스틴의 사회적 풍자보다 두 사람의 사랑과 운명 쪽으로 더 강하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 결과 다아시도 제가 상상했던 ‘오만한 남자’라기보다 어딘가 서툴고 수줍은 남자로 보였습니다.
매튜 맥퍼딘의 다아시는 냉정한 귀족이라기보다 사람 대하는 법이 서툰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면 조금 묘해집니다.
엘리자베스가 그의 오만을 깨뜨리는 이야기라기보다,
수줍고 무뚝뚝한 남자를 여자가 오해했다가 나중에 진심을 알아보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목의 날이 무뎌집니다.
《오만과 편견》인데,
오만은 생각보다 약하고,
편견은 주로 오해에 가까워집니다.
제목이 조금 억울해집니다.
그래서 《센스 앤 센서빌리티》 쪽 손을 들겠습니다
두 영화를 놓고 어느 쪽이 제목값을 더 잘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센스 앤 센서빌리티》입니다.
제목부터 ‘이성과 감성’입니다.
그리고 영화가 정말 그걸 보여줍니다.
엘리너는 감정을 눌러두고,
마리앤은 감정을 그대로 살아냅니다.
한쪽은 참으며 버티고,
한쪽은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온몸으로 드러냅니다.
두 자매를 보고 있으면 제목이 따로 설명되지 않아도 됩니다.
영화 자체가 이미 이성과 감성을 비교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 영화는 사랑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돈의 문제를 시작부터 아주 노골적으로 보여줍니다.
집안의 형편이 바뀌고,
여자들은 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고,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줄 것인지 이야기합니다.
새로운 재산을 손에 넣은 사람들이 처음 생각했던 도움의 액수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장면은 거의 우스울 정도입니다.
처음에는 꽤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그다음에는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줄입니다.
또 이유를 붙입니다.
다시 줄입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이 자기 인색함을 얼마나 논리적으로 포장할 수 있는지 아주 잘 보여줍니다.
저는 이런 장면이 오스틴의 재미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물론 책을 안 읽었으니 여기서도 조심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영화만 놓고 보면 《센스 앤 센서빌리티》에는 사랑과 돈이 같이 있습니다.
그리고 둘이 서로 따로 놀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사랑의 선택지가 달라지고,
신분 때문에 감정을 숨겨야 하고,
결혼이 감정의 결말이면서 동시에 생활의 결론이 됩니다.
이 구조가 훨씬 또렷했습니다.
엠마 톰슨의 각본이 영리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는 엠마 톰슨이 각본을 썼습니다.
그리고 엘리너까지 직접 연기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카데미 각색상까지 받았습니다.
제가 두 영화를 연달아 떠올리면서 느낀 차이도 결국 각색의 방향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한쪽은 사랑을 앞으로 끌어냈고,
한쪽은 사랑이 놓인 사회적 조건을 같이 남겼습니다.
《오만과 편견》은 로맨스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데 능하고,
《센스 앤 센서빌리티》는 왜 이 여자들에게 사랑이 단순히 사랑일 수 없는지를 더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후자가 저한테는 조금 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제목값으로 따지자면 확실히 이쪽입니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 WIN.
아주 유치한 판정 방식이지만 영화 보고 느낀 건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한쪽을 엄청 좋아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극찬하고 《오만과 편견》을 혹평하는 글은 아닙니다.
둘 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둘 다 제게 아주 좋은 영화였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아마 제가 이런 종류의 고전 로맨스에 기대하는 감정이 조금 다른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영화 모두 인물과 이야기는 흥미로웠는데,
사랑 자체에는 크게 빠져들지 못했습니다.
《오만과 편견》에서는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사랑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충분히 체감하지 못했고,
《센스 앤 센서빌리티》에서는 이야기의 구조는 좋았지만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는 두 영화를 비교하면서 더 재미있었습니다.
같은 작가가 비슷한 재료를 가지고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변주했는지 보는 쪽이요.
그리고 두 영화가 그 재료를 어떻게 각색했는지 비교하는 일이 사랑 이야기 자체보다 더 흥미로웠습니다.
이 정도면 역시 저는 로맨스 영화를 제대로 보는 인간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오만과 편견》을 보고 난 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다가 가장 의외였던 건 원작이 상당히 웃긴 소설이라는 평가였습니다.
영화만 봐서는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가벼운 유머도 있고 사람들을 비꼬는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2005년 영화에서 제가 받은 가장 강한 인상은 웃음보다 로맨스였습니다.
아름다운 풍경,
감정적인 시선,
운명적으로 가까워지는 두 사람.
그러다 보니 원작의 풍자가 얼마나 날카로운지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 얘기를 알고 나니 오히려 책이 궁금해졌습니다.
재산 좋은 남자를 노리는 결혼 시장을 그렇게 비꼬는 책이라면,
제가 영화에서 본 것보다 훨씬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뼈대를 두 번 썼다는 제 인상이 원작을 읽고도 그대로일지 궁금합니다.
영화만 보면 분명히 비슷합니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문체와 풍자, 인물의 내면 때문에 완전히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죠.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책을 안 읽었으니까요.
그러니 여기서 아는 척을 더 하면 정말 제목처럼 오만해집니다.
둘 다 안 보셨다면 저는 책부터 권하고 싶습니다
조금 이상한 결론입니다.
영화 두 편을 이야기해 놓고 마지막에 책을 추천하는 글이라니요.
그런데 지금 제 감상은 그렇습니다.
둘 다 아직 접하지 않은 분이라면 영화보다 책을 먼저 읽어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어도 《오만과 편견》은 특히 그렇습니다.
영화는 아름답습니다.
키이라 나이틀리와 매튜 맥퍼딘도 좋습니다.
조 라이트의 화면도 정말 근사합니다.
그런데 정작 왜 이 이야기가 200년 가까이 계속 읽히는지는 영화만 보고서는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반면 책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보면 사람들이 사랑보다 사람들의 허영과 계산, 자기기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많이 웃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쪽이 훨씬 궁금합니다.
예쁜 사랑 이야기보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돈과 계급과 자존심 때문에 허둥대는 사람들.
그게 제인 오스틴이라면 저는 영화를 조금 잘못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글의 결론은 결국 처음과 같습니다.
책으로 읽을걸.
그런데 처음에는 영화가 심심해서 나온 말이었고,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책에서 빠진 게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두 영화가 이렇게 비슷해 보인 것도,
사랑보다 돈이 먼저 보인 것도,
《센스 앤 센서빌리티》가 제목을 더 잘 지킨 것처럼 느껴진 것도,
책을 읽고 나면 전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 이 글을 다시 읽으면 좀 부끄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의외로 꽤 맞는 말을 해놨을 수도 있고요.
후자라면 좋겠습니다.
책 한 권 안 읽고 제인 오스틴을 제법 잘 봤다고 우길 수 있으니까요.
그 정도 오만은,
제목이 허락해 주지 않을까요.ㅎ
이 글은 볼까pick 운영자의 개인적인 감상과 의견입니다. 작품 페이지의 「호불호 정리」는 찬반 양쪽을 균형 있게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칼럼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