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이야기가 흐릿해질수록 배우가 선명해졌다
이야기가 흩어질수록 붙잡을 것이 사람 하나만 남더군요
이상한 영화였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는 끝내 또렷해지지 않는데, 그렇다고 보는 동안 지루하지도 않았습니다. 장면들은 자꾸 옆길로 새고, 후반에 가서는 굳이 저런 선택까지 해야 했을까 싶은 순간도 생기는데,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남습니다.
보통은 앞뒤가 잘 맞지 않는 감상입니다.
그런데 《어느날》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두 문장이 동시에 성립했습니다.
이 영화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래도 꽤 괜찮았다.
왜 그런가를 생각해 보면 결국 한 사람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천우희입니다.
아마 이 영화에서 천우희를 빼고 이야기하라고 하면 저는 꽤 곤란할 겁니다. 설정도, 이야기의 주제도, 멜로드라마적인 요소도 따로 떼어놓고 보면 그렇게까지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천우희가 그 한가운데 서는 순간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제게는 《한공주》에서보다 여기서 더 좋았습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오히려 《어느날》에서의 연기가 어색하다고 느낀 사람도 있을 겁니다. 실제로 이 인물은 현실에 발을 붙이고 서 있는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조금만 균형이 틀어져도 연기가 붕 뜨기 쉽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부유하는 느낌까지 포함해서 좋았습니다.
캐릭터가 좋아서였느냐고 묻는다면 반쯤은 맞습니다.
그래도 부등호를 하나 그으라면 저는 확실히 연기 쪽에 놓겠습니다.
캐릭터 < 연기.
그게 이 영화를 버티게 만든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몸이 없는 사람을 연기한다는 것
설정만 놓고 보면 꽤 익숙합니다.
아내를 잃은 뒤 삶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는 보험회사 직원 강수. 그리고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여자 미소.
그런데 미소는 자신의 몸과 떨어진 채 돌아다니고, 강수에게만 보입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자연스럽게 판타지 영화의 규칙부터 궁금해집니다.
왜 강수에게만 보일까.
무엇까지 만질 수 있을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이게 영혼인가, 환상인가.
하지만 《어느날》은 그 규칙을 집요하게 설명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상당히 무심합니다. 설정을 치밀하게 구축한 뒤 관객에게 하나씩 알려 주는 종류의 판타지도 아닙니다.
그냥 존재합니다.
저는 이 무심함이 의외로 배우에게 꽤 가혹한 조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몸이 없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이 적다는 뜻입니다.
사물을 바꿀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의 행동에 직접 개입할 수도 없고,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화를 낸다고 상황이 바뀌지 않고, 도움을 청한다고 누가 달려오지도 않습니다.
배우가 감정을 행동으로 확장할 수 있는 통로가 절반쯤 잘려 있는 셈입니다.
보통 이런 인물은 설정에 잡아먹히기 쉽습니다.
관객은 사람보다 장치를 보기 시작합니다.
‘저게 가능한가?’
‘저 상황에서는 왜 저렇게 되지?’
그런데 《어느날》에서는 이상하게 반대였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적어지니 오히려 사람만 남았습니다.
표정이 남고, 말투가 남고, 상대를 바라보는 방식이 남습니다.
그래서 미소라는 인물이 어떤 거대한 행동을 하지 않는데도 화면 안에서는 계속 살아 있습니다.
죽어 있지도 않고 살아 있지도 않은 설정의 인물이 오히려 영화에서 가장 생생하게 보인다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이야기가 흩어질수록 결국 사람을 보게 됩니다
문제는 영화의 이야기가 그만큼 단단하지 않다는 겁니다.
《어느날》은 한 가지 주제를 향해 직진하는 영화처럼 보이다가도 자꾸 다른 곳으로 갑니다.
처음에는 상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다음에는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것 같고, 어떤 순간에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조금 더 가면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관한 영화 같기도 합니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이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것들이 하나의 중심으로 완전히 모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보는 동안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결국 하려는 이야기는 뭘까.
영화가 일부러 여백을 남기는 것과, 이야기의 초점이 흩어지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릅니다.
《어느날》은 종종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합니다.
어떤 장면은 설명하지 않아서 좋고, 어떤 장면은 그냥 덜 정리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야기의 중심이 흐릿해질수록 오히려 배우가 더 선명해진다는 점입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붙잡을 곳을 찾게 되니까요.
서사가 확실하면 서사를 따라갑니다.
사건이 강하면 사건을 따라갑니다.
그런데 둘 다 희미하면 결국 화면 안에 있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어느날》에서 제가 끝까지 붙잡은 것은 미소였습니다.
그 점에서는 영화가 꽤 위험한 도박을 한 셈입니다.
자기 이야기를 거의 배우에게 담보로 맡겨버렸으니까요.
천우희가 조금만 흔들렸다면 영화 전체가 같이 무너졌을 겁니다.
저는 그 담보가 부도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꽤 높은 이자까지 붙여 돌려받았습니다.
그런데 후반부는 굳이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을까
좋게 보고 있다가도 후반에 가면 조금 걸립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쓰지 않겠습니다.
다만 영화가 어느 순간부터 감정을 조금 더 명확하게 정리하려 하고, 큰 결정을 하나 꺼내 듭니다.
저는 그 부분이 꽤 억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앞에서는 모호함을 견디던 영화가 갑자기 관객에게 감정의 방향을 알려 주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가만히 두어도 됐던 것을 굳이 손으로 만져 모양을 만드는 것 같았달까요.
조용히 흘러가던 영화가 마지막에 와서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이런 의미입니다”라고 조금 힘을 주기 시작하면 오히려 앞에서 좋았던 것들이 상합니다.
특히 《어느날》처럼 인물의 공기와 감정을 믿고 가던 영화라면 더 그렇습니다.
배우가 이미 충분히 하고 있는데 영화가 갑자기 나서서 설명을 거드는 셈이니까요.
그럴 필요 없었습니다.
오히려 가만히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
잘 가던 사람 옆에 와서 굳이 길을 설명하다 길을 헷갈리게 만드는 친절이라고 해야 할까요.
조금 덜 친절했으면 더 세련됐을 영화였습니다.
이윤기 영화는 이해보다 수용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영화가 싫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윤기 감독의 영화와 제 취향이 어느 정도 맞기 때문일 겁니다.
이윤기의 영화들은 대체로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인물은 중요한 말을 크게 하지 않고, 감정도 극적인 장면보다는 그 앞뒤의 침묵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계속 정확한 답을 찾으려 들면 답답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감독의 영화를 볼 때는 ‘이해한다’는 표현보다 ‘수용한다’는 표현이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해는 구조를 파악하는 느낌입니다.
왜 그런지 알고, 원인을 찾고, 결론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반면 수용은 조금 다릅니다.
완전히 설명되지 않아도 일단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아, 이 사람은 지금 이렇구나.’
그 정도에서 멈출 수 있는 태도입니다.
《어느날》도 그렇게 보는 편이 낫습니다.
왜 강수와 미소가 만나야 했는지, 그 관계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영화가 삶과 죽음에 대해 무엇을 주장하는지 하나씩 정답을 찾으려고 하면 금세 피곤해집니다.
반대로 그냥 두 사람의 시간을 따라가면 의외로 잘 흘러갑니다.
114분인데 크게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었을 겁니다.
다만 이런 영화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설명하지 않을 거면 사람이 좋아야 합니다.
서사를 희미하게 둘 거면 인물은 믿을 만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으면서 사람까지 매력 없으면 그건 여백이 아니라 공백이 됩니다.
《어느날》은 그 위험한 차이를 천우희 한 사람으로 상당 부분 건너갑니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이야기보다 배우가 먼저 남습니다.
좋은 영화가 반드시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질 필요는 없겠지만, 배우 하나가 영화 전체의 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는 꽤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추천하느냐고 묻는다면
쉽게 추천할 영화는 아닙니다.
이야기가 단단하게 맞물려야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답답할 가능성이 큽니다.
후반부의 감정적 선택도 사람에 따라서는 꽤 낡은 멜로드라마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 부분까지 좋았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자, 정혜》나 《멋진 하루》,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남과 여》 같은 이윤기 감독의 영화를 좋게 봤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그 영화들에서 느꼈던 느슨함과 침묵, 인물 사이에 남겨 둔 빈 공간이 좋았다면 《어느날》도 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반대로 그 영화들을 보면서 답답해서 속이 터졌다면 굳이 또 도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도 학습이라는 게 있어야 하니까요.
저는 이윤기 감독의 영화가 대체로 맞는 편입니다.
그러니 《어느날》도 결국 나쁘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지금도 몇 군데는 흐릿합니다.
그런데 천우희의 미소는 기억납니다.
어떤 영화는 이야기가 사람을 데리고 갑니다.
이 영화는 반대였습니다.
사람 하나가 조금 흐트러진 이야기를 끝까지 데리고 갑니다.
《어느날》은 제게 그런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정도면 됐습니다.
이 글은 볼까pick 운영자의 개인적인 감상과 의견입니다. 작품 페이지의 「호불호 정리」는 찬반 양쪽을 균형 있게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칼럼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