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 아웃, 두 시간 동안 화면에 대고 나가라고 말하는 영화
몰입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무력함이었어요
『겟 아웃』을 볼 때 저는 이 영화가 무슨 장르인지도 제대로 몰랐습니다.
그냥 화제라기에 틀었습니다.
그러니 기대치라는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첫 장면을 보고는 그 얼마 안 되는 기대마저 한 번 더 내려갔습니다.
‘아, 인종차별 이야기구나.’
하필 그 직전에 『문라이트』를 본 상태였습니다. 이미 비슷한 문제를 훨씬 진지하고 무겁게 다룬 영화를 한 편 보고 난 뒤였으니, 처음에는 『겟 아웃』이 조금 뻔하게 보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 영화 입장에서는 제가 아주 좋은 관객이었습니다.
기대가 바닥이면 올라갈 일만 남으니까요.
그리고 정말 올라갔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본 영화 가운데 몰입감만 놓고 보면 저는 아직도 『겟 아웃』을 상당히 높은 곳에 둡니다.
그런데 시간이 꽤 지난 뒤에야 알았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 그렇게 몰입했던 건 다음 장면이 궁금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주인공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자꾸 이상합니다.
누가 노골적으로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협박하는 사람도 없고, 당장 도망쳐야 할 명백한 증거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말투가 이상하고, 표정이 이상하고, 너무 친절해서 이상하고, 웃어야 할 때 웃는 방식도 이상합니다.
하나하나 떼어 놓고 보면 별것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자리에 모아 놓으면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
‘뭐지?’
그 생각이 영화 내내 따라붙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뭐지?’가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듭니다.
궁금증과는 조금 다릅니다.
궁금한 건 기다리면 됩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길지, 숨겨진 비밀이 무엇인지 기다리면 언젠가는 답이 나옵니다.
그런데 『겟 아웃』에서 느끼는 감정은 답을 기다리는 쪽보다 사고를 기다리는 쪽에 가깝습니다.
분명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더 답답한 건 관객이 주인공보다 조금 앞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압니다.
저 사람들 이상하다고.
저 집 이상하다고.
여기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다고.
그런데 주인공은 아직 거기 있습니다.
그러니 자꾸 화면을 향해 말하고 싶어집니다.
나가.
그냥 나가.
설명하지 말고, 예의 차리지 말고, 이유 찾지 말고 일단 나가.
생각해 보면 제목부터 이미 답을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Get Out』.
이건 영화 속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관객이 주인공에게 두 시간 동안 하고 싶은 말에 가깝습니다.
제목을 참 잘 지었습니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관객이 가장 많이 속으로 외칠 말을 세 글자로 미리 적어 둔 셈입니다.
이 영화에서 특히 영리하다고 느낀 것은 악의 얼굴입니다.
대놓고 나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친절합니다.
관심을 보이고, 좋은 말을 하고,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문제는 그 모든 친절이 조금씩 과하다는 겁니다.
호의라는 포장을 벗길 만큼 명백한 잘못은 없는데, 이상하게 불쾌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계속 자기 감각을 의심합니다.
내가 예민한가.
이게 인종 문제라고 생각하는 내가 오히려 편견에 사로잡힌 건가.
괜히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사람을 가장 곤란하게 만드는 건 때로 적의가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운 호의입니다.
적의는 피하면 됩니다.
누가 나를 싫어한다고 대놓고 말하면 관계를 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웃으면서 잘해 주는데 기분이 나쁘면 상황이 복잡해집니다.
문제 제기를 하는 순간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겟 아웃』은 그 불편한 간극을 아주 오래 끌고 갑니다.
주인공은 근거가 부족하고, 관객에게는 감각이 있습니다.
우리는 저게 이상하다는 걸 압니다.
그런데 화면 밖에 있으니 아무것도 못 합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말했던 ‘몰입’의 정체는 여기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재미있어서 빨려 들어간 것만은 아닙니다.
무력해서 못 빠져나왔습니다.
알고 있는데 도와줄 수 없다는 감각.
아마 그래서 더 오래 긴장했던 것 같습니다.
무서운 장면은 지나가면 끝나지만, 답답함은 해결되기 전까지 계속 남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공포보다 답답함이 사람을 더 오래 붙들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제대로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말에서는 조금 힘이 빠졌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결말 주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겠지만, 아무 정보 없이 보실 분이라면 영화를 본 뒤 읽는 편이 낫습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제 감상은 단순했습니다.
‘이렇게 끝난다고?’
뻔해서 실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너무 깔끔하게 끝났다고 불평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뭔가 하나 빠진 느낌이었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사람을 그렇게 조여 놓았으면 마지막에 한 번쯤 명치를 때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얌전하게 내려놓더군요.
화룡점정을 기다렸는데 붓을 그냥 내려놓은 기분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이유를 조금 다르게 봅니다.
『겟 아웃』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정체를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상한데 이유를 모를 때.
웃고 있는데 왜 무서운지 설명할 수 없을 때.
주인공은 모르는 것을 관객도 완전히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시기의 영화는 아주 독특합니다.
그런데 비밀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부터 상황이 바뀝니다.
불안이 사건이 되고, 기괴함이 구체적인 위협이 됩니다.
그러면 영화도 자연스럽게 조금 더 익숙한 스릴러의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무엇이 무서운지 알았으니 이제는 그것을 피하거나 상대하면 됩니다.
모를 때가 더 무섭습니다.
알고 나면 싸울 수 있으니까요.
결국 제가 마지막에서 느낀 밋밋함은 어느 정도 구조적으로 피하기 어려운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가 가장 잘하던 일은 이미 중반까지 거의 끝난 셈이니까요.
저는 마지막에 한 번 더 최고점을 요구하고 있었고, 영화는 이미 그 점을 지나온 뒤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납득이 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았습니다.
제가 기다리던 그 ‘마지막 한 방’이 원래는 있었습니다.
조던 필은 지금과 다른 결말을 실제로 촬영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가혹한 방향이고, 주인공이 상황에서 온전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사 과정에서 관객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화를 즐겁게 따라오던 관객들에게 마지막 순간 너무 강하게 명치를 때리는 것 같았다는 반응이었고, 결국 지금의 결말로 바뀌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기분이 조금 묘했습니다.
‘그러니까 있었는데 지웠다고?’
제가 아쉬워했던 한 점은 감독이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니었습니다.
생각했고, 찍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관객 반응 때문에 걷어냈습니다.
그걸 알고 나니 괜히 억울하더군요.
저는 그 결말을 견뎠을 것 같습니다.
아니, 아마 지금보다 더 좋아했을 겁니다.
물론 지금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주 쉽습니다.
저는 그 시사회장에 있지도 않았고, 실제로 그 결말을 극장에서 직접 경험한 것도 아닙니다.
남들이 먼저 맞아 본 명치를 두고 나중에 “나는 견딜 수 있었는데”라고 말하는 것만큼 편한 일도 없습니다.
그래도 제 취향을 묻는다면 그렇습니다.
저는 그 영화가 저를 조금 덜 배려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두 시간 동안 ‘나가’라고 외치게 만들었으면,
마지막에는 정말 못 나갔을 때 관객에게 무엇이 남는지도 보여 줬으면 했습니다.
그쪽이 이 영화가 처음부터 쌓아 온 불안과도 더 잔인하게 맞물렸을 것 같습니다.
특히 『겟 아웃』이 단순한 탈출 스릴러가 아니라 인종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개인의 기지와 우연으로 위기에서 빠져나오면 관객은 안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질문은 훨씬 불편해집니다.
왜 못 빠져나왔는지.
무엇이 그를 붙잡았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걸 보면서 왜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지.
저는 아마 그 찝찝함을 조금 더 오래 가지고 갔을 겁니다.
대신 영화는 관객에게 출구를 열어 줬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이 틀렸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겟 아웃』은 작은 제작비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고, 조던 필은 자신의 감독 데뷔작으로 아카데미 각본상까지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했고, 영화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결말이 영화적으로 잘못됐다고 우기는 건 꽤 오만한 일이겠죠.
다만 성공과 개인적인 아쉬움은 얼마든지 같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겟 아웃』은 결말 때문에 평가가 무너지는 영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앞부분의 힘이 워낙 강해서 마지막이 상대적으로 평범해 보이는 영화에 가깝습니다.
친절한 얼굴이 왜 그렇게 불쾌할 수 있는지.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사실이 어떻게 사람의 감각을 무력화하는지.
그리고 관객에게 정보를 조금 더 준 뒤 아무 행동도 못 하게 만들면 얼마나 강한 몰입이 생기는지.
그걸 아주 영리하게 보여 줬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영화를 떠올리면 반전보다 먼저 그 집 안의 묘한 공기가 생각납니다.
사람들은 웃고 있습니다.
아무도 대놓고 위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화면 밖에서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나가라고.
빨리 나가라고.
그리고 이제 와서 생각하면 조금 우습습니다.
두 시간 내내 그렇게 나가라고 해 놓고,
막상 영화가 정말 출구를 열어 주니까 저는 또 불평하고 있습니다.
그 출구, 너무 쉽게 열어 준 것 아니냐고요.
관객이라는 게 원래 이렇습니다.
살려 달라고 해 놓고,
막상 살려 주면 명치 한 번쯤은 더 때렸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합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같은 쪽입니다.
『겟 아웃』은 저를 충분히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조금만 더 불친절했으면,
아마 훨씬 오래 좋아했을 겁니다.
이 글은 볼까pick 운영자의 개인적인 감상과 의견입니다. 작품 페이지의 「호불호 정리」는 찬반 양쪽을 균형 있게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칼럼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