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포스트, 결말을 아는 역사에서 유일하게 결말을 모르던 사람
그래서 메릴 스트립만 빛났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요.
스티븐 스필버그.
톰 행크스.
메릴 스트립.
이 세 이름을 한 줄에 세워놓으면 사실 영화 소개는 거의 끝난 셈입니다.
감독이 스필버그고 주연이 톰 행크스와 메릴 스트립이라니, 안 볼 이유를 찾는 게 더 어렵습니다. 게다가 세 사람이 한 작품에서 만난 게 처음이고, 스필버그는 다른 작품의 후반 작업을 하던 중 각본을 읽고 곧바로 연출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보기 전부터 작품 쪽에서 기대치를 알아서 올려놓습니다.
저도 당연히 봤습니다.
그리고 다 보고 나서 조금 곤란해졌습니다.
좋다는 평은 너무 많았는데,
저는,
음.
상황은 긴박한데 이상하게 안 긴박합니다
《더 포스트》가 다루는 사건만 놓고 보면 긴장감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정부가 오랫동안 감춰온 베트남전 관련 기밀문서.
그 문서를 입수한 언론.
보도를 막으려는 정부.
법적 책임.
회사의 생존.
상장을 앞둔 경영 문제.
잘못 선택하면 언론사 전체가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모든 게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저는 별로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상황은 분명 긴박합니다.
배우들도 긴박하게 움직입니다.
전화가 오가고, 사람들이 뛰고, 회의가 이어지고, 결정을 재촉합니다.
그런데 저는 자꾸 지루했습니다.
후반으로 가면 조금 조여지긴 합니다.
그래도 이상하게 숨이 막히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습니다.
답은 너무 간단했습니다.
결말을 아니까요.
워싱턴 포스트가 결국 보도했다는 것도 알고.
펜타곤 페이퍼가 세상에 공개됐다는 것도 알고.
언론사들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도 압니다.
이미 역사책 안으로 들어간 사건입니다.
극 중 인물들은 미래를 모르지만 관객은 압니다.
그러니 영화가 아무리 위험하다고 말해도 저는 어느 정도 안전한 자리에서 보고 있습니다.
“큰일 난다.”
배우가 말합니다.
저는 압니다.
큰일은 나지만 결국 이 사람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깁니다.
서스펜스 입장에서는 꽤 불리한 조건입니다.
담백한 영화가 항상 맛있는 건 아닙니다
요즘 실화를 다루는 언론 영화들은 이상할 만큼 기름기를 빼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포트라이트》도 그랬습니다.
거대한 사건을 다루면서도 음악으로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영웅적인 연설을 남발하지 않고, 기자들이 취재하고 확인하는 과정 자체를 보여줍니다.
좋은 방식입니다.
건강합니다.
문제는,
건강한 음식이 항상 맛있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더 포스트》도 제게는 조금 그랬습니다.
결말을 이미 아는 이야기인데 연출까지 절제돼 있습니다.
자극도 줄이고.
영웅주의도 줄이고.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도 아낍니다.
모든 걸 담백하게 요리합니다.
영화적으로는 훌륭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입에서는 자꾸 심심했습니다.
이미 아는 역사를 보는 데 양념까지 걷어내니 남는 게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런 담백함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정확히 장점일 겁니다.
저한테는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사건 자체는요.
그런데 한 사람은 결말을 모릅니다
그래도 끝까지 보게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캐서린 그레이엄.
메릴 스트립입니다.
그리고 이 인물을 따라가기 시작하면서 영화가 조금 달리 보였습니다.
톰 행크스가 맡은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는 비교적 명확한 사람입니다.
보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이라면 해야 할 일이고, 정부가 감추려는 사실이라면 더더욱 알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물론 위험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방향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문제는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제로 밀어붙일 수 있느냐에 가깝습니다.
캐서린 그레이엄은 다릅니다.
이 사람은 정말 모릅니다.
보도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보도했다가 회사가 무너지면 어쩔지.
투자자들이 떠나면 어쩔지.
법적 책임을 지게 되면 어쩔지.
게다가 상대는 단순한 정부가 아닙니다.
자신이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도 연결돼 있습니다.
회사도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의 죽음 이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책임을 떠안았습니다.
이사회에는 남자들이 가득하고, 중요한 이야기가 오갈 때마다 그녀가 정말 결정권자인지 의심하는 분위기가 흐릅니다.
그 상황에서 마지막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은 캐서린입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이 영화의 진짜 미지수는 펜타곤 페이퍼가 아니었습니다.
캐서린 그레이엄의 결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메릴 스트립만 빛났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당연히 톰 행크스와 메릴 스트립의 연기 대결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니 제게는 대결이라고 하기도 애매했습니다.
메릴 스트립 승.
물론 톰 행크스가 못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좋습니다.
늘 그렇듯 자기 역할을 정확히 합니다.
그런데 캐릭터가 놓인 자리가 다릅니다.
벤 브래들리는 처음부터 앞으로 갑니다.
캐서린은 계속 멈춥니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하고.
주변 눈치를 보고.
회사가 흔들릴 가능성을 계산하고.
자기가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는지도 의심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결정을 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사건의 변화가 아니라 이 사람의 표정 변화입니다.
처음에는 남자들 사이에서 조금 작아 보입니다.
회의실에서도 눈치를 봅니다.
누군가 질문하면 한 박자 늦게 반응합니다.
자기 회사인데도 자기 회사 같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결정을 자기 입으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 변화가 영화의 진짜 드라마였습니다.
역사의 결말은 알고 있어도 그 순간 캐서린의 머릿속 결말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만 살아 있습니다.
저에게 메릴 스트립만 빛났다는 건 배우 한 명이 다른 배우들을 눌렀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미래를 모르는 인물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메릴 스트립은 그 망설임을 너무 잘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사건보다 전화 한 통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더 포스트》를 본다면 펜타곤 페이퍼 사건 자체에 긴장감을 기대하기보다는 캐서린의 심리를 따라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신문이 보도하느냐 마느냐보다,
이 사람이 언제 자기 목소리로 결정을 내리게 되는가를 보는 겁니다.
특히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전화 장면.
저는 거기가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봤습니다.
주변에는 온갖 사람이 있습니다.
법률적인 위험을 말하는 사람.
회사 재정을 걱정하는 사람.
보도해야 한다는 사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
모두가 자기 논리를 가지고 말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결국 한 사람이 결정해야 합니다.
결정이라는 게 원래 그렇습니다.
조언은 여러 명에게 받을 수 있는데,
결과는 대신 져주지 않습니다.
최종적으로 입을 열어야 하는 건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그 장면에서야 영화가 처음으로 정말 긴장됩니다.
이번에는 결말을 알기 때문이 아니라,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즘 영화냐고 묻는다면
이 작품을 여성의 성장이나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평도 많았습니다.
이해는 합니다.
캐서린 그레이엄은 남성 중심의 언론과 경영 세계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여성이고, 당시 사회 분위기 역시 영화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회의실에 남성들만 가득하고.
여성이 말을 하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캐서린 본인도 오랫동안 그런 질서 안에서 살아왔습니다.
그 배경은 중요합니다.
다만 저는 이 작품이 페미니즘을 아주 깊게 파고든다고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차별이 당연하게 존재하던 시대.
그리고 미국 주요 일간지를 이끄는 여성 발행인.
이 두 사실만으로 이미 의미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보여주는 것과 그 문제 자체를 깊이 파고드는 건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제게 《더 포스트》는 페미니즘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라기보다, 캐서린이 결정을 내리는 무게에 시대의 성차별이 추가로 얹혀 있는 영화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배경입니다.
하지만 제가 영화를 보며 가장 크게 느낀 중심은 아니었습니다.
왜 국내에서는 크게 안 됐을까
이 영화가 국내에서는 기대만큼 흥행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보고 조금 생각해봤습니다.
언론의 역할.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
국민의 알 권리.
정부가 감추려는 사실을 보도할 용기.
한국에서도 너무 익숙한 주제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덜 먹힌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우리는 국정농단이라는 거대한 현실을 이미 통과했습니다.
언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권력과 언론이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시민이 왜 감시해야 하는지.
이 모든 걸 영화가 아니라 현실 뉴스로 오랫동안 봤습니다.
매일 봤습니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왔고.
수많은 보도가 쏟아졌고.
언론을 두고 서로 분노하고 논쟁했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에게 《더 포스트》가 들려주는 메시지는 새롭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언론은 권력보다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맞는 말입니다.
너무 맞는 말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미 그 말을 현실에서 질리도록 들었고, 어떤 대가를 치르며 확인했다는 겁니다.
영화가 뒤늦게 정답지를 들고 찾아온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건 영화의 잘못이라기보다 관객의 상황 문제였을 겁니다.
좋은 말을 듣기에도 타이밍이 있습니다.
너무 늦게 들으면 감동이 아니라 확인이 됩니다.
저는 이 영화의 많은 대사를 들으며 감동보다는,
그래, 맞는 말이지.
그 정도였습니다.
맞는 말은 많은데 마음을 움직인 말은 따로 있었습니다
언론은 국민을 섬겨야 한다.
보도하지 않으면 국민이 진다.
뉴스는 역사의 첫 번째 초안이다.
좋은 문장들입니다.
틀린 말도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문장들보다 캐서린을 두고 나오는 다른 말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용기보다 죄책감이 더 큰 동기가 될 수 있다는 말.
이게 이상하게 와닿았습니다.
사람은 늘 용감해서 행동하는 게 아닙니다.
겁이 없어져서 결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무섭습니다.
실패할 것 같고.
손해 볼 것 같고.
괜히 나섰다가 모든 걸 잃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 하는 쪽이 더 못 견딜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움직입니다.
용기가 충분해서가 아니라,
안 했을 때 느낄 죄책감이 더 커서.
캐서린의 결정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영웅적인 각성이 번쩍 찾아오는 게 아닙니다.
갑자기 강인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무서운 채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사람은 결정을 내린 다음에야 용감해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정하기 전에는 그냥 겁먹은 사람일 뿐입니다.
결국 제가 본 건 펜타곤 페이퍼가 아니었습니다
《더 포스트》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잘 만든 영화고.
배우들도 좋고.
스필버그의 연출도 안정적입니다.
다만 저는 재미있게 보지는 못했습니다.
긴박해야 할 사건은 이미 결말을 알고 있었고, 영화는 그 역사를 꽤 담백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지루했습니다.
좋은 영화라고 인정하면서 지루할 수 있습니다.
두 말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저에게 이 작품을 살린 건 결국 메릴 스트립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캐서린 그레이엄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역사의 결말.
보도는 나갈 것이고.
정부와 싸울 것이고.
그 선택은 훗날 옳은 결정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하지만 전화기를 들고 있던 그 순간의 캐서린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사람에게 아직 역사는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궁금했던 것도 그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할까.
그 선택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리고 입을 열 수 있을까.
사건은 이미 역사였는데,
그 사람의 결심만은 아직 현재였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더 포스트》는 펜타곤 페이퍼를 다룬 영화라기보다,
한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처음 결정을 내리는 순간을 찍은 영화였습니다.
나머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만 몰랐습니다.
이 글은 볼까pick 운영자의 개인적인 감상과 의견입니다. 작품 페이지의 「호불호 정리」는 찬반 양쪽을 균형 있게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칼럼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