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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아이, 비를 좋아한다고 했다가 미친 놈 소리를 들었습니다

십몇 년 전에 쓴 리뷰를 다시 꺼냈는데, 마음이 그대로더군요

2026년 9월 9일운영자 개인 의견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하숙집 아저씨에게 제가 비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비를 사랑합니다.”

영국 사람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나 봅니다.

아저씨는 저를 잠깐 보더니 미친 놈 취급을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해는 됩니다. 일 년 중 상당한 시간을 축축한 하늘 아래에서 보내는 사람에게 비가 낭만적이라고 떠드는 건, 매일 야근하는 사람 앞에서 회사 불빛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정말 비를 좋아합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고등학교 2학년쯤이었을 겁니다. 괜히 세상이 복잡해 보이고, 별것 아닌 일에도 혼자 의미를 붙이고, 문학소년인 척 시 같은 걸 끄적거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흐린 날을 좋아했습니다.

비가 오기 직전 조금씩 어두워지는 하늘이 좋았고, 첫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릴 때의 소리가 좋았습니다. 한참 쏟아지고 나면 세상이 잠깐 조용해진 것 같은 느낌도 좋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꽤 전형적인 사춘기 취향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춘기는 끝났는데 비 좋아하는 취향은 안 없어졌습니다.

대학에 가서는 거기에 사람이 하나 더 붙었습니다.

저만큼, 어쩌면 저보다 더 비를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비가 오면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다가 비가 오면 괜히 더 좋아했습니다. 우산이 있어도 그냥 조금 맞고 걸을 때가 있었고, 별 내용도 없는 이야기를 오래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특별한 사건이 많았던 것도 아닙니다.

그냥 비가 왔고, 술이 있었고, 그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기억이 오래 갑니다.

그래서 저는 비가 나오는 영화에 관해서는 좋은 평론가가 될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편파적입니다.

『늑대아이』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2012년 작품입니다.

평범한 대학생 하나가 늑대인간을 사랑하고, 그와의 사이에서 두 아이를 낳습니다. 그리고 혼자가 된 뒤 두 아이를 키웁니다.

줄거리만 적으면 정말 단순합니다.

눈 오는 날 태어난 딸의 이름은 유키.

비 오는 날 태어난 아들의 이름은 아메.

엄마의 이름은 하나, 꽃입니다.

이름부터 이미 이 영화가 어떤 온도로 흘러갈지 보여 줍니다.

눈, 비, 꽃.

계절이 지나가고 아이들이 자랍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구는 인간의 세계로 가고, 누구는 그 반대쪽으로 걸어갑니다.

『늑대아이』를 처음 봤을 때도 좋았지만, 십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떠올려 봐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역시 비입니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죽는 날, 비가 내립니다.

그리고 훗날 아메가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중요한 순간에도 거센 비가 쏟아집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이 두 장면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사라진 날의 비와, 아들이 떠나는 날의 비.

하나는 한 사람을 잃은 날이고, 다른 하나는 한 아이를 보내야 하는 날입니다.

둘 다 비 속에서 일어납니다.

이게 감독이 의도한 정확한 연결인지, 아니면 제가 비를 좋아해서 그렇게 받아들인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십몇 년째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영화에서 중요한 건 감독이 정답지를 나눠 주는 일이 아니라, 관객에게 무엇이 남느냐고 생각하니까요.

저에게 『늑대아이』는 비가 오는 영화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보내는 영화로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이 작품을 성장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유키와 아메가 자라고, 각자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결국 자신이 살아갈 방식을 선택하는 이야기.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나이가 조금 든 뒤 다시 생각해 보니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보였습니다.

지금은 하나가 더 많이 보입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결국 언젠가 보내기 위해 키우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자기 곁에 오래 두고 싶어 하지만, 제대로 키웠다면 결국 자기에게서 멀어지는 순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온 힘을 다해 품었다가, 잘 자랐다는 증거로 놓아줘야 한다니.

하나는 그 일을 합니다.

아메의 선택이 자신이 바라던 방향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메가 그 길을 고른 순간, 하나는 붙잡지 않습니다.

물론 쉽게 보내는 것도 아닙니다.

보낸다고 해서 안 서운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마지막으로 갈수록 이 작품이 육아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떠나보내는 법’에 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친구가 떠오릅니다.

대학 시절 비를 좋아하던 친구.

저에게는 아직도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중요한 친구이고, 그 시절을 떠올리면 거의 항상 같이 등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만나지 않습니다.

싸운 적도 없습니다.

싫어진 것도 아닙니다.

누가 누구에게 실망해서 관계를 정리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졸업했고,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각자 자기 자리에서 살아가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어릴 때는 인간관계가 끝나는 데에는 반드시 사건이 있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싸움.

배신.

오해.

절교.

그런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살아 보니 대부분의 관계는 그렇게 극적으로 끝나지 않더군요.

조금씩 연락이 줄고, 약속을 잡으려다 서로 일정이 안 맞고, 다음에 보자고 말한 뒤 몇 계절이 지나갑니다.

그렇게 누군가는 추억 속으로 이동합니다.

사이가 멀어진 게 아니라 시간이 멀어집니다.

그 사실이 조금 서운합니다.

친구에게 서운한 것은 아닙니다.

삶에 대해 서운합니다.

어떤 좋은 시절도 계속 유지해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서운하고, 아무리 소중한 관계라도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 영원히 머물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시절에 대한 안타까움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늑대아이』에서 하나가 아메를 보내는 모습을 보면 예전과 다른 마음이 듭니다.

사랑한다면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야 하는 순간도 있다는 걸 압니다.

안다고 해서 잘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이해한다고 덜 서운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그런 것이 삶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될 뿐입니다.

작품 자체는 아주 조용합니다.

엄청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건이 쉴 새 없이 터지는 영화도 아닙니다.

그래서 정적인 이야기를 답답하게 느끼는 사람에게는 심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담백함을 좋아합니다.

조용한데 가볍지 않고, 별일 없는 것처럼 흘러가는데 지나고 나면 이상하게 남는 이야기.

배경음악도 좋습니다.

늑대인간이라는 설정 역시 결국은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기 안에 서로 다른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고, 결국 어느 쪽으로 살아갈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이야기니까요.

유키는 자기 길을 선택합니다.

아메도 자기 길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하나는 그 선택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아이들의 성장만큼이나, 아이를 보내야 하는 사람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십몇 년 전 저는 이 영화를 보고 ‘강추’라고 적었습니다.

지금도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영화는 당시의 기분만 남고 작품은 희미해집니다.

반대로 어떤 영화는 장면 하나, 음악 하나, 날씨 하나가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습니다.

『늑대아이』는 저에게 후자입니다.

어쩌면 작품이 좋아서인지도 모르고, 제가 비를 좋아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둘 다겠죠.

그리고 오늘도 가끔 비가 오면 그 친구가 생각납니다.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는 대충 알지만, 대학 시절처럼 갑자기 만나 비를 맞고 술을 마실 수는 없습니다.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갔으니까요.

하나는 아메를 보내고, 저는 어떤 시절을 보냈습니다.

형태는 전혀 다르지만 결국 비가 내리는 가운데 누군가를 자기 자리로 보내 준다는 점에서는 조금 닮아 있는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에는 비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거창하게 쏟아질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 창밖에서 들릴 만큼만.

다정하지만 조금은 급한 듯한 빗방울이,

오래전 친구가 문 앞에 찾아온 것처럼,

창문을 몇 번 두드려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볼까pick 운영자의 개인적인 감상과 의견입니다. 작품 페이지의 「호불호 정리」는 찬반 양쪽을 균형 있게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칼럼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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