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언스, 내가 누구 편인지 모르게 만드는 드라마
나에게 이익이 되는 악은 선일까요
금융.
증권.
권력.
음모.
제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 넣은 것 같은 드라마입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 이후 한동안 이런 종류의 미드가 그리웠습니다. 사람이 권력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돈과 명예 앞에서 윤리가 얼마나 쉽게 방향을 바꾸는지, 그리고 그 모든 걸 똑똑한 사람들이 아주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하는 이야기.
《빌리언스》는 그 갈증을 꽤 오래 채워준 드라마였습니다.
겉으로 보면 구도는 단순합니다.
한쪽에는 천문학적인 돈을 굴리는 헤지펀드 매니저 바비 액설로드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그를 잡으려는 연방검사장 척 로즈가 있습니다.
돈으로 세상을 휘두르는 자본가와 그를 법으로 막으려는 검사.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아주 쉽게 나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 단순한 구도를 몇 화 안 가서 망가뜨립니다.
그리고 더 못된 짓을 하나 합니다.
인물들의 선악만 헷갈리게 만드는 게 아니라,
보고 있는 저한테도 묻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지금 누구 편인데?
원래 데미안 루이스는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데미안 루이스라는 배우를 이전에도 여러 번 봤습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도 봤고,
《홈랜드》에서도 봤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목소리도 제 취향이 아니었고, 외모도 특별히 끌리지 않았습니다.
좋은 배우라는 건 알겠는데 ‘내가 좋아하는 배우’ 쪽으로는 한 번도 넘어온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빌리언스》의 바비 액설로드는 달랐습니다.
배우가 달라진 건 아닙니다.
목소리도 그대로고 얼굴도 그대로예요.
그러니 이건 전적으로 캐릭터와 드라마의 힘이라고 해야 맞겠습니다.
액스는 처음 보면 상당히 불쾌한 인간입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
상대를 망가뜨리는 데 거리낌이 없고,
자기에게 유리하다면 법의 경계쯤은 얼마든지 넘습니다.
심지어 그의 부가 시작된 방식에는 9·11이라는 아주 불편한 기억까지 붙어 있습니다.
드라마 속 설정에서 액스는 9·11 당일 회사 밖에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그날 항공주 공매도로 큰돈을 법니다.
동료들이 죽던 날 돈을 벌었다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싫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면 생각이 조금씩 바뀝니다.
저 사람은 그날의 돈이 없어도 결국 돈을 벌었을 것 같다.
금융 시장을 보는 감각이 있고,
숫자를 읽고,
사람을 읽고,
위험을 감지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결정합니다.
다른 사람은 고민하는 순간에 이미 베팅을 끝낸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기묘한 생각이 듭니다.
9·11의 종잣돈은 시간을 당겨준 것뿐 아니었을까.
여기까지 오면 이미 위험합니다.
처음에는 “저런 인간”이라고 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그의 재능을 설명하고 있으니까요.
악인에게 능력을 주면 관객은 곤란해집니다
액스의 매력은 착해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능력이 있기 때문에 생깁니다.
자기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그걸 과시하는 데 주저함이 없고,
상대가 누구든 이길 방법을 찾아냅니다.
드라마는 이 남자의 악행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악행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도 보여줍니다.
여기서 관객의 윤리가 조금씩 흔들립니다.
악한데 유능합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사람은 무능한 선인보다 유능한 악인에게 더 오래 시선을 주기도 합니다.
액스는 자기 사람도 끔찍하게 챙깁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그의 사람이 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애정과는 거리가 멉니다.
충성하고,
성과를 내고,
쓸모를 증명해야 합니다.
그 조건을 통과한 사람에게는 엄청난 보상을 줍니다.
어찌 보면 굉장히 냉혹한 시스템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사랑한다기보다 성능이 좋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멋있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여기쯤에서 저는 슬슬 제 쪽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문제 있는 인간을 보고 있는데,
“그래도 자기 사람은 챙기잖아.”
“그래도 실력은 있잖아.”
이런 식으로 변호를 붙이고 있으니까요.
이건 액스가 저를 설득한 걸까요.
아니면 제가 유능한 악인을 좋아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걸까요.
반대편에 서 있다고 해서 선인은 아닙니다
처음의 척 로즈는 훨씬 편하게 볼 수 있습니다.
법을 어기는 거물을 잡으려는 연방검사장.
구도만 보면 정의의 편입니다.
액스가 악이라면 척은 당연히 선이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그렇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처음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런데 《빌리언스》는 이 남자에게도 오래 면죄부를 주지 않습니다.
척은 정의감만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야망이 강하고,
자존심이 세고,
자기 이름과 지위에 민감합니다.
액스를 잡고 싶어 하는 이유 역시 순수한 공익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기고 싶어서 잡을 때도 있고,
자기가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법과 권력을 사용할 때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이게 무섭습니다.
액스는 자기가 악한 짓을 한다는 걸 대체로 압니다.
척은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서 나쁜 짓을 합니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무서운지는 매번 달라집니다.
폴 지어마티가 그걸 아주 잘 보여줍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의 얼굴로 나쁜 짓을 하고,
나쁜 짓을 하면서도 스스로는 명분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악에 맞서는 선’이라는 구도가 아예 사라집니다.
남는 건 이기려는 두 사람입니다.
사실 이 드라마에는 착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주인공 둘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돈을 원하고,
누군가는 인정받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자리를 지키려 하고,
누군가는 복수하고 싶어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어떤 사람은 그 욕망을 감추고,
어떤 사람은 대놓고 드러낸다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한 명씩 뜯어보면 마음 놓고 응원할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매 화 누군가를 응원하게 됩니다.
이게 재미있습니다.
이번 화에는 액스.
다음 화에는 척.
그러다 다시 액스.
어떤 순간에는 둘 다 싫다가,
다음 순간에는 둘 중 하나가 이기길 바랍니다.
처음에는 인물들이 너무 복잡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래 보다 보니 알겠더군요.
제가 편을 바꾸는 기준은 선악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누가 더 영리했나.
누가 더 통쾌하게 상대를 눌렀나.
누가 더 멋있는 수를 뒀나.
그리고 솔직히,
이번 화에 누구 쪽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나.
그게 제 기준이었습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 악은 선일까요
이 지점부터 《빌리언스》는 단순한 권력 싸움 드라마가 아니게 됩니다.
인물들이 아니라 보는 사람 쪽을 건드립니다.
사람은 도덕적으로 옳은 편을 든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정의롭고,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을 응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드라마 안에서 제가 응원하는 사람을 보면 그 기준이 아주 쉽게 바뀝니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규칙을 어기면,
‘저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지.’
싫어하는 캐릭터가 같은 짓을 하면,
‘역시 저 인간은 쓰레기야.’
결과가 나한테 통쾌하면 악행도 전략이 되고,
내가 싫어하는 인물이 하면 같은 전략이 비열함이 됩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 악은 선일까.
나에게 손해가 되는 선은 악일까.
《빌리언스》는 이 질문을 인물들에게 던지는 척합니다.
하지만 진짜 시험받는 건 보는 사람입니다.
액스와 척의 윤리가 매 화 바뀌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더 자주 바뀌는 건 제 판단 기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즌 4가 덜 재미있었던 겁니다
저는 시즌 4에서 몰입도가 꽤 떨어졌습니다.
이상했습니다.
평가는 오히려 좋아지는 것 같은데 저는 전보다 재미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오래 봐서 지쳤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즌 4의 구조를 다시 생각해 보니 이유가 좀 보였습니다.
액스와 척이 한편이 됩니다.
각자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공동 전선을 만듭니다.
이게 서사적으로는 재미있는 변화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서로 죽일 듯 싸우던 두 사람이 손을 잡으니까요.
그런데 저한테는 오히려 긴장이 줄었습니다.
둘이 싸우지 않으니까 제가 편을 고를 일이 없어졌습니다.
이번엔 액스인가.
척인가.
그 질문 자체가 사라집니다.
판정할 게 없습니다.
그러니 이 드라마가 저에게 가장 재미있었던 이유 하나가 통째로 빠진 셈입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빌리언스》는 액스와 척이 존재해서 재미있는 게 아니라,
둘이 서로 싸워야 재미있는 드라마였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보자 묘하게 평평해졌습니다.
그래서 시즌 4 마지막에 둘이 다시 갈라서는 걸 보고 오히려 반가웠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사이좋게 지내면 좋을 텐데,
드라마에서는 다시 싸워야 살아납니다.
웬디는 그 사이에서 가장 난처한 사람입니다
매기 시프가 연기한 웬디 로즈도 이 드라마에서 빼놓기 어렵습니다.
액스 캐피털의 퍼포먼스 코치.
직원들이 멘탈이 무너진 상태로 들어갔다가 웬디와 이야기하고 나오면 갑자기 전투력이 올라갑니다.
말 몇 마디 듣고 다시 시장으로 뛰어나가 돈을 벌어옵니다.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저런 상담사한테 상담 한번 받아보고 싶다.
문제는 이 사람이 척의 아내라는 겁니다.
남편은 액스를 잡으려고 하고,
자기는 액스의 회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한쪽만 선택하면 편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더 재미있습니다.
액스와 척 사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흔들리는 사람은 관객만이 아닙니다.
웬디 역시 매 순간 비슷한 질문을 받습니다.
충성은 어디까지인가.
직업과 가족 중 무엇을 먼저 놓아야 하는가.
누가 옳으냐보다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가 더 어려운 질문이 됩니다.
이 인물이 재미있는 이유도 완벽하게 중립적이지 않아서입니다.
언제나 현명하지도 않고,
매번 좋은 선택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처럼 보입니다.
왁스는 요즘 기준이면 정말 큰일 날 사람입니다
데이비드 코스타빌이 연기한 왁스도 잊기 어렵습니다.
액스를 거의 신처럼 믿고 따릅니다.
직원들에게 쏟아내는 말은 요즘 직장이라면 인사팀에 신고가 몇 건 들어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수준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소당한다면 가장 먼저 이름 올라갈 사람입니다.
말도 거칠고,
행동도 거칠고,
도덕적으로 모범적인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미워하기 어렵습니다.
《슈츠》에서 봤던 배우인데, 저는 이제 이쪽 역할이 먼저 떠오를 것 같습니다.
《빌리언스》는 이런 인물을 잘 만듭니다.
싫어해야 맞는 사람에게 이상한 매력을 줍니다.
그리고 그걸 보는 관객이 자신의 기준을 조금씩 양보하게 만듭니다.
액스에게 했던 일을 주변 인물에게도 반복하는 셈입니다.
이 드라마가 잘하는 건 결국 ‘넘어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미안 루이스 이야기가 다시 돌아옵니다.
저는 원래 이 배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비 액설로드를 보면서 좋아하게 됐습니다.
이 사실 자체가 《빌리언스》가 잘하는 일을 설명합니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습니다.
저 배우 별로야.
저 캐릭터 싫어.
저 인간은 악인이야.
그런데 계속 보다 보면 한 단계씩 넘어갑니다.
그래도 잘하잖아.
그래도 똑똑하잖아.
그래도 자기 사람은 챙기잖아.
그래도 이번 판은 저쪽이 이겨야 재밌잖아.
이 ‘그래도’가 계속 쌓입니다.
그러다 보면 처음 세워 놓았던 선이 어디였는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빌리언스》는 관객을 액스 편으로 완전히 끌고 가는 드라마는 아닙니다.
그보다 조금 더 교활합니다.
내가 왜 그 사람 편을 들고 있는지 모르게 만듭니다.
그리고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아차리게 합니다.
어디까지 봤는지는 이제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보다가 흐름이 끊겼습니다.
시즌 5까지 본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 어디까지 갔는지는 기억이 흐립니다.
확인해 보니 《빌리언스》는 시즌 7로 끝났습니다.
액스는 시즌 5 이후 한동안 빠지고,
다른 인물이 중심에 들어왔다가,
마지막 시즌에 다시 돌아옵니다.
여기까지 알고 나니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냥 보던 데부터 이어볼까.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볼까.
지금은 후자 쪽으로 조금 기울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보면 재미있는 게 하나 있을 것 같거든요.
예전에 액스를 응원했던 제가 다시 보일 테니까요.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처음부터 저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으니,
예전처럼 쉽게 넘어가지는 않겠죠.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시작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 또 넘어갈 겁니다.
액스가 잘해서가 아니라,
이 드라마가 그걸 너무 잘해서요.
이 글은 볼까pick 운영자의 개인적인 감상과 의견입니다. 작품 페이지의 「호불호 정리」는 찬반 양쪽을 균형 있게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칼럼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