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미러, 아무것도 모르고 보라는 말밖에 못 하는 드라마
이 드라마에 대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추천, "사전 조사 없이 그!냥! 보세요!"
《블랙 미러》를 추천하려고 하면 이상한 문제가 생깁니다.
좋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신선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충격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냉소적이고, 기묘하고, 꽤 불편하며, 어떤 에피소드는 보고 난 뒤 한동안 생각이 남는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 설명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추천이 망가집니다.
줄거리를 이야기하면 안 되고,
설정을 자세히 말해도 안 되고,
심지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 작품인지 힌트를 주는 것조차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결국 남는 말은 하나입니다.
사전 조사하지 말고 그냥 보세요.
정말 이것밖에 없습니다.
제목부터 이미 설명은 끝나 있습니다
《블랙 미러》는 영국 채널 4에서 시작했고, 이후 시즌 3부터 넷플릭스를 통해 이어진 앤솔러지 시리즈입니다.
대본을 이끄는 찰리 브루커가 작품 제목에 대해 설명한 말이 있습니다.
기술이 일종의 마약처럼 사용되고 있다면 그 부작용은 무엇인가.
그리고 제목의 ‘검은 거울’은 우리가 늘 마주하는 차갑고 번쩍이는 화면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텔레비전.
모니터.
스마트폰.
전원이 꺼진 화면을 한번 보시면 됩니다.
까만 화면에 자기 얼굴이 비칩니다.
검은 거울입니다.
저는 이 설명이면 작품 소개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오히려 여기에서 멈춰야 합니다.
더 말하기 시작하면 이미 너무 많이 말하게 됩니다.
아직 안 봤다면 그게 행운입니다
《블랙 미러》 리뷰를 찾아보면 비슷한 말이 유난히 많이 나옵니다.
아직 안 봤다면 부럽다.
처음 보는 경험을 다시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내용 찾아보지 말고 바로 봐라.
저도 같은 말을 하게 됩니다.
이 시리즈는 에피소드마다 이야기가 독립적이라 한 편만 골라 이야기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설명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한 편의 설정을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에피소드의 첫 번째 놀라움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블랙 미러》에서는 그 첫 번째 정보가 꽤 중요합니다.
관객이 무엇을 알고 들어왔느냐에 따라 보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 예고편도, 줄거리도, 에피소드별 평점도 굳이 찾아보지 않는 쪽을 권합니다.
좋다는 말만 믿고 하나를 틀어보는 편이 가장 좋습니다.
이상한 추천입니다.
보통 작품을 추천할 때는 왜 좋은지 설명해야 하는데, 이 작품은 왜 좋은지를 설명하지 않는 것이 추천의 일부가 됩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가 남았습니다
처음 몇 편을 봤을 때 제 감상은 꽤 단순했습니다.
신선했습니다.
이야기가 어디로 갈지 모르겠고,
결과를 예상하기 어려웠습니다.
SF적인 기술이 등장하지만 너무 먼 미래처럼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생각했지?
도대체 작가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 거지?
그리고 동시에 조금 불편했습니다.
기술 자체는 낯선데 사람이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은 너무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기술은 미래인데 욕망은 현재였습니다.
인정받고 싶어 하고,
남보다 우위에 서고 싶어 하고,
남의 시선을 궁금해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고,
상대를 통제하고 싶어 합니다.
새로운 기계만 주어졌을 뿐, 그 기계를 쥔 인간은 별로 새롭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면 속 이야기가 멀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도 언젠가 저렇게 되는 걸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편 보다 보면 질문이 조금 바뀝니다.
언젠가?
정말 언젠가일까?
이 드라마는 예측 불가능한 게 아니라 예측하게 만듭니다
《블랙 미러》를 두고 흔히 예상할 수 없는 전개라는 말을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계속 보다 보니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이 드라마는 관객의 예측을 피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계속 예측하게 만듭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합니다.
사람이 그 기술을 사용합니다.
그러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저걸 저렇게 쓰겠지.
저 사람은 결국 저런 선택을 하겠지.
이건 분명 이런 문제로 이어지겠지.
우리는 아주 빠르게 다음 장면을 계산합니다.
그런데 《블랙 미러》의 재미는 단순히 그 계산을 뒤집는 데 있지 않습니다.
더 재미있는 순간은 따로 있습니다.
왜 내가 그런 방향을 예상했는가.
그 질문이 돌아옵니다.
저 사람이 기술을 악용할 거라고 왜 생각했지?
사람은 저런 상황에서 당연히 저렇게 행동할 거라고 왜 확신했지?
나는 인간을 원래 그렇게 보고 있었던 건가?
그러면 반전의 대상이 이야기가 아니라 관객이 됩니다.
결과가 예상 밖이라서 놀라는 게 아니라,
내가 예상한 방식이 너무 쉽게 나왔다는 사실 때문에 조금 불편해집니다.
그래서 ‘거울’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제목이 정말 절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울은 미래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지금 서 있는 사람을 보여줍니다.
《블랙 미러》에 등장하는 기술들은 종종 미래처럼 보이지만, 그 기술 자체가 진짜 주인공은 아닙니다.
거기에 비친 사람 쪽이 더 중요합니다.
욕망.
질투.
허영.
죄책감.
호기심.
외로움.
통제 욕구.
이런 것들은 하나도 미래의 감정이 아닙니다.
이미 다 가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기술은 그것을 확대해 줄 뿐입니다.
그러니 《블랙 미러》를 보고 “기술이 무섭다”고만 말하면 조금 부족합니다.
저는 오히려 사람이 무섭습니다.
같은 기술이라도 누가 어떤 욕망을 가지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욕망이 화면 속 인물들에게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보고 있는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이 바뀝니다.
우리도 저렇게 될까?
에서,
혹시 이미 비슷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로요.
사전 조사를 하면 왜 아까운가
그래서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보라’는 말을 단순한 스포일러 방지용으로만 쓰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스포일러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블랙 미러》는 관객이 준비하지 않은 상태일수록 더 재미있습니다.
거울을 보기 전에 표정을 만들면 거울에는 만든 얼굴이 비칩니다.
사진 찍을 줄 알고 있으면 웃을 준비부터 하잖아요.
반대로 갑자기 거울을 마주하면 자기가 원래 하고 있던 표정이 보입니다.
《블랙 미러》도 비슷합니다.
‘이 에피소드는 이런 주제래.’
‘결말이 충격적이래.’
‘반전이 있대.’
이런 정보를 미리 알고 들어가면 관객은 이미 준비된 표정을 짓습니다.
반전을 찾고,
주제를 찾고,
복선을 찾습니다.
그러면 작품이 관객을 끌고 가기 전에 관객이 먼저 작품을 분석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게 조금 아깝습니다.
이 시리즈는 분석하기 전에 먼저 당해보는 쪽이 재미있습니다.
어딘가 이상한 상황을 보고,
조금 웃고,
조금 불편해하다가,
나중에 ‘잠깐만’ 하는 순간을 만나는 것.
그 경험을 미리 설명으로 빼앗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도 내용을 안 씁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하나만 고르라면 시즌 3의 6화입니다.
제목은 〈Hated in the Nation〉.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왜 기억에 남는지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도 안 쓰겠습니다.
재미있는 점이 무엇인지도 쓰지 않겠습니다.
이 글까지 읽고 나서 따로 검색하시면 제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전부 헛수고가 됩니다.
그냥 보시면 됩니다.
정말로요.
이런 식으로 리뷰를 끝내야 하는 드라마도 흔하지 않습니다.
비판적인데 설교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
《블랙 미러》는 굉장히 비판적인 작품입니다.
기술을 바라보는 태도도 냉소적이고,
사람을 보는 시선도 그리 따뜻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 이 드라마가 훈계한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습니다.
아마 기술 자체를 악당으로 만들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은 나쁘다.’
‘SNS는 나쁘다.’
‘기술 발전은 인간을 망친다.’
이런 단순한 결론으로 끝났다면 금방 질렸을 겁니다.
문제는 늘 사람 쪽에 조금 더 가까이 있습니다.
사람은 새로운 기술을 얻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이미 가지고 있던 욕망을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
편리함을 위해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그리고 자기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기술 앞에서 얼마나 쉽게 위험을 모른 척할 것인가.
그 질문들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시대가 조금 지나도 에피소드가 쉽게 낡지 않습니다.
특정 기술의 정확한 미래 예측보다 인간 행동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계는 구식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욕망은 생각보다 업데이트가 느립니다.
새 시즌이 나오면 또 봅니다
저는 마지막 시즌까지 봤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즌이 나오면 다시 각 잡고 정주행합니다.
이 정도 봤으면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합니다.
‘블랙 미러니까 뭔가 있겠지.’
‘분명 여기서 한번 비틀겠지.’
이미 어느 정도 학습된 관객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도 봅니다.
그리고 또 당합니다.
재미있는 건 그 과정 자체가 조금 《블랙 미러》스럽다는 겁니다.
검은 화면 앞에 앉아서,
기술에 잡아먹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다음 화 버튼이 뜨면 바로 누릅니다.
화면 속 사람을 보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한 다음,
몇 초 뒤 자동 재생되는 다음 에피소드를 그대로 봅니다.
가끔은 각 잡고 몰아봅니다.
검은 거울 앞에 앉아서 검은 거울에 관한 이야기를 몇 시간씩 보는 사람.
이쯤 되면 찰리 브루커가 굳이 이 장면을 에피소드로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 촬영 없이 완성되어 있으니까요.
제 방에서도,
아마 다른 누군가의 방에서도.
그러니 아직 《블랙 미러》를 안 보셨다면 다른 글은 그만 찾아보셔도 됩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추천은 결국 처음과 같습니다.
사전 조사 없이,
그!냥! 보세요.
그리고 화면이 꺼졌을 때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누가 비치고 있는지.
이 글은 볼까pick 운영자의 개인적인 감상과 의견입니다. 작품 페이지의 「호불호 정리」는 찬반 양쪽을 균형 있게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칼럼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