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킹 배드, 줄거리가 안 와닿는 게 정상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가느냐의 드라마거든요
미드 추천 이야기가 나오면 늘 빠지지 않는 작품이 있습니다.
《브레이킹 배드》.
저도 누군가 추천작을 물으면 거의 항상 상위권에 넣습니다.
그런데 정작 줄거리만 설명하려고 하면 조금 곤란해집니다.
고등학교 화학 교사 월터 화이트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습니다. 가족에게 돈을 남기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화학 지식을 이용해 마약 제조에 손을 댑니다.
끝.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 제 반응은 이랬습니다.
그래서 뭐?
엄청난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세계를 뒤흔드는 음모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천재적인 화학 교사가 범죄에 손을 댄다는 설정은 흥미롭지만 그것만으로 다섯 시즌을 끌고 갈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저는 추천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 보고 나서 알았습니다.
줄거리만 읽고 별로 와닿지 않는 게 이상한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정상에 가까웠습니다.
《브레이킹 배드》의 진짜 이야기는 줄거리에 적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에는 처음부터 비밀이 없습니다
보통 장기 드라마는 질문을 쌓습니다.
저 사람의 정체는 뭘까.
범인은 누구일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저 문 뒤에는 뭐가 있을까.
그리고 답을 조금씩 미루면서 다음 화를 보게 합니다.
《브레이킹 배드》는 거의 정반대입니다.
월터가 마약을 만들게 된다는 걸 첫 회부터 압니다.
왜 만드는지도 압니다.
병에 걸렸다는 사실도 압니다.
출발점이 어디인지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니 시청자가 붙들고 갈 커다란 미스터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긴장감은 계속 올라갑니다.
이게 이상합니다.
비밀이 없는데 긴장됩니다.
답을 알고 있는데 다음 화를 누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드라마의 질문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질문은 훨씬 단순합니다.
저 사람은 다음에 어디까지 갈까.
한 번 넘은 선은 다음 선을 부릅니다
처음의 월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가족입니다.
자기가 죽은 뒤 남을 가족을 위해 돈을 마련하겠다고 합니다.
이 정도만 보면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잘했다는 뜻이 아니라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정도는 알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입니다.
처음에는 여기까지만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상황이 생기고,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며 선을 하나 넘습니다.
그다음에는 조금 더 멀리 갑니다.
그리고 또다시 이유를 붙입니다.
처음보다 훨씬 나쁜 일을 하는데도 자신에게는 여전히 설명이 있습니다.
가족 때문이고,
살기 위해서고,
상대가 먼저 그랬고,
이제 와서 멈출 수 없어서입니다.
그렇게 선을 하나씩 넘습니다.
중요한 건 그 선을 넘는 순간마다 월터가 갑자기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주 조금씩 변합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한 번에 괴물이 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구분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브레이킹 배드》는 한 사람을 붙잡고 아주 천천히 이동시킵니다.
처음에는 이해했던 선택이,
몇 화 뒤에는 변명이 되고,
조금 더 지나면 욕망이 됩니다.
보고 있는 사람도 그 속도에 익숙해집니다.
월터만 선을 넘는 게 아니라 시청자의 기준도 같이 밀려갑니다.
그래서 한 줄 줄거리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줄거리는 보통 사건을 적습니다.
누가 무엇을 했고,
그다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방식으로 《브레이킹 배드》를 설명하면 정말 심심합니다.
화학 교사가 마약을 만들고,
범죄 조직과 엮이고,
경찰을 피하고,
점점 큰일을 벌입니다.
적어놓고 보면 범죄물에서 특별히 처음 보는 재료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중심은 사건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보다 그 일을 겪으며 사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중요합니다.
더 정확하게는,
달라지는 사람이 스스로 자신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얼마나 오래 믿을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줄거리 소개만 보면 “그래서 뭐?”가 됩니다.
그 문장 안에는 월터의 얼굴이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의 월터와 마지막의 월터 사이에 벌어진 일을 줄거리 몇 줄로 적는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이 사라집니다.
이 드라마는 사건을 보는 작품이 아니라,
변화를 목격하는 작품입니다.
브라이언 크랜스턴에게 상이 몰린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브라이언 크랜스턴은 월터 화이트 역으로 에미 남우주연상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애런 폴 역시 제시 핑크맨 역으로 에미 남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상을 몇 번 받았는지가 작품의 가치를 전부 증명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브레이킹 배드》에서는 왜 배우 쪽에 그렇게 많은 시선이 갔는지 이해가 됩니다.
이 이야기는 결국 사람이 변하는 이야기니까요.
월터는 어느 날 갑자기 악당의 얼굴을 하지 않습니다.
변화가 너무 빠르면 캐릭터가 무너지고,
너무 느리면 시청자가 지루해집니다.
그 중간을 다섯 시즌 동안 끌고 갑니다.
목소리가 달라지고,
걷는 방식이 달라지고,
상대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침묵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얼굴로 나오는데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걸 설명하는 건 대사가 아니라 배우의 몫입니다.
제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한없이 가벼워 보이던 사람이 시간을 지나며 다른 무게를 갖습니다.
그래서 《브레이킹 배드》를 보고 나면 사건보다 얼굴이 기억납니다.
누가 누구를 속였는지보다,
그 일을 하고 난 뒤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가 더 오래 남습니다.
인기 미드는 오래 갈수록 흔들립니다
장기 드라마를 보다 보면 늘 생기는 걱정이 있습니다.
시즌이 늘어날수록 이야기가 산으로 갑니다.
처음에는 좋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캐릭터가 억지로 움직이고,
새로운 악당을 집어넣고,
더 큰 비밀을 만들고,
이미 끝났어야 할 이야기를 계속 잡아 늘입니다.
인기가 많으면 더 심합니다.
끝낼 수 있을 때 끝내지 못하니까요.
《브레이킹 배드》는 시즌 5까지 62화입니다.
길다면 길지만 장기 미드 기준으로는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닙니다.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완성도가 크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지막으로 갈수록 더 강해집니다.
저는 그 이유도 출발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폐암 말기.
월터의 시간에는 처음부터 제한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영원히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끝나야 합니다.
그러니 이야기를 무한히 늘리기 어렵습니다.
끝이 처음부터 있으니 옆으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드라마는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계속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야 합니다.
비밀 하나를 풀면 더 큰 비밀이 나오고,
그걸 풀면 또 다른 조직이 나오고,
그 위에 다시 누군가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작품이 처음 어디서 출발했는지도 희미해집니다.
《브레이킹 배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목적지는 처음부터 있습니다.
문제는 거기까지 어떤 얼굴로 가느냐입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옆으로 퍼지기보다 아래로 파고듭니다.
새로운 사건을 계속 만들기보다 이미 있는 인물을 더 깊이 파냅니다.
월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제시는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두 사람이 만든 선택이 주변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계속 깊어집니다.
그래서 산으로 갈 틈이 적습니다.
산으로 가려면 길을 잃어야 하는데,
이 드라마는 애초에 목적지가 정해져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인물도 나오고 새로운 사건도 생깁니다.
그런데 대부분 월터가 이미 선택한 길을 더 좁게 만드는 방향으로 들어옵니다.
길을 넓히는 게 아니라 퇴로를 없앱니다.
그 차이가 큽니다.
긴장은 ‘들킬까’에서만 오지 않습니다
범죄 드라마니까 당연히 들킬까 봐 긴장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런데 《브레이킹 배드》의 가장 큰 긴장은 저는 거기서 오지 않았습니다.
월터가 잡힐까보다,
월터가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할까가 더 무서웠습니다.
“설마 저것까지 하겠어?”
라고 생각합니다.
합니다.
그다음에는,
“그래도 이건 안 하겠지.”
합니다.
계속 이런 식입니다.
그러면 시청자는 점점 월터를 믿지 않게 됩니다.
재미있는 건 월터 자신은 오히려 자신을 더 강하게 믿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그 간극이 커질수록 긴장도 커집니다.
시청자는 이 사람이 변했다는 걸 보는데,
당사자는 여전히 자기가 처음과 같은 이유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그렇게 말합니다.
가족.
생존.
책임.
처음에는 진짜였던 단어들이 나중에는 점점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같은 말을 하는데 전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 변화가 이 드라마의 진짜 스토리입니다.
그리고 제게는 꽤 강력한 단점도 있었습니다
스카일러.
월터의 부인입니다.
저한테는 정말 짜증나는 캐릭터였습니다.
한때는 제가 본 미드 캐릭터 가운데 짜증 유발 순위 최상단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홈랜드》의 캐리를 만나고 순위가 바뀌었습니다만.
물론 지금 다시 생각하면 조금 재미있는 지점도 있습니다.
시청자가 월터에게 지나치게 동화되어 있으면 그를 막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방해물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스카일러가 짜증났다는 제 감상 자체가 제가 얼마나 월터 쪽에서 이 이야기를 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감상은 감상이니까요.
볼 때는 정말 짜증났습니다.
여기서 굳이 점잖은 척 다시 평가를 수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당시의 저는 확실히 그렇게 봤습니다.
그리고 이런 캐릭터 하나 때문에 작품 전체에 대한 몰입이 무너질 정도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정도로 싫어하는 인물이 있는데도 끝까지 끌고 간 걸 보면 드라마의 힘이 더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시즌 3쯤부터 영어가 들리는 기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사소하지만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브레이킹 배드》에는 아무래도 성인용 표현이 많습니다.
일상적인 영어 공부용 드라마로 추천하기에는 조금 애매할 수 있습니다.
잘못 배워서 회사에서 썼다가는 영어 실력보다 인사팀 호출 속도를 먼저 확인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시즌 3쯤 가니 이상하게 사람들 대화가 조금씩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자막을 따라가기도 바빴는데,
어느 순간 몇 문장은 자막보다 먼저 귀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영어 실력이 갑자기 늘었을 리는 없고,
아마 같은 인물의 말투를 계속 들어 익숙해졌거나,
너무 집중해서 봤기 때문일 겁니다.
혹은 드라마에서 사용하는 문장이 생각보다 단순했을 수도 있고요.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62화가 부담스럽지 않았던 이유
숫자만 보면 62화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적지 않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음 화를 봐야 하는 이유가 매번 생기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떡밥을 던져놔서가 아닙니다.
이번에 월터가 넘은 선 다음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 변화가 연속되어 있으니 중간에 멈추기 어렵습니다.
다른 장기 시리즈에서는 시즌 하나를 마치면 잠깐 쉬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브레이킹 배드》는 오히려 시즌 마지막에 다음 시즌을 바로 누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그게 다섯 시즌 동안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즌이 이어질수록 설정이 커지는 게 아니라 사람이 더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의 느낌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
예전에도 이 작품을 추천하면서 늘 난감했습니다.
재미있다는 말은 쉬운데,
왜 재미있는지를 짧게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액션이 엄청나서?
그것만은 아닙니다.
반전이 많아서?
그것도 아닙니다.
범죄 세계가 흥미로워서?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결국 사람이 변하는 속도를 지켜보는 재미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인간이 자기가 그어놓은 선을 하나씩 지우는 과정.
그리고 그걸 지우면서도 계속 자기 자신에게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
그게 62화 동안 이어집니다.
그래서 《브레이킹 배드》는 줄거리만 가지고 추천하기 어려운 드라마입니다.
줄거리에는 변화의 속도가 들어가지 않으니까요.
처음과 끝만 적으면 한 사람이 악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사이에 있는 수십 번의 선택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선택 하나하나를 보고 나면 마지막이 갑자기 생긴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쩌면 그래서 마지막까지 완성도가 유지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끝을 향해 달려간 게 아니라,
첫 화부터 이미 있던 끝을 천천히 드러낸 셈이니까요.
그래서 다시 보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또 보고 싶어졌습니다.
이상합니다.
62화나 되는 걸 이미 봤는데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습니다.
다시 보면 아마 처음과는 전혀 다르게 보일 겁니다.
처음에는 월터가 어디까지 갈지 모르고 봤습니다.
두 번째는 압니다.
그러면 사건의 긴장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대신 다른 게 보일 것 같습니다.
정확히 어느 순간부터 달라졌는지.
어떤 변명부터 진짜 이유가 아니게 됐는지.
어느 선을 넘었을 때 돌아올 수 없게 됐는지.
이미 결말을 알고 있으니 오히려 그 과정이 더 잘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하나 더 확인할 게 있습니다.
정말 시즌 3부터 영어가 들렸던 건지.
혹시 그때 제가 드라마에 너무 빠져서 영어까지 잘한다고 착각한 건지.
이건 다시 봐야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침 핑계도 생겼습니다.
좋네요.
《브레이킹 배드》를 다시 보는 데 필요한 건 62화의 시간보다,
처음 한 화를 다시 누를 이유 하나였으니까요.
이 글은 볼까pick 운영자의 개인적인 감상과 의견입니다. 작품 페이지의 「호불호 정리」는 찬반 양쪽을 균형 있게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칼럼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