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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칼의 날, 아는 맛이 맛있습니다

쫓는 쪽이 약한데도 강추입니다. 자칼 한 접시가 상을 거의 다 차렸거든요.

2026년 9월 12일운영자 개인 의견

에디 레드메인을 좋아합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스티븐 호킹도 좋았고, 《대니쉬 걸》의 릴리 엘베도 강하게 남았습니다.

이 배우를 보면 늘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사람을 연기한다기보다 자기 몸을 잠깐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 같다고.

얼굴 생김새야 그대로인데 몸의 모양부터 달라집니다. 자세가 바뀌고, 걸음걸이가 바뀌고, 손을 쓰는 방식이 달라지고, 눈빛의 온도까지 바뀝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는 스티븐 호킹이 됐고, 《대니쉬 걸》에서는 릴리 엘베가 됐습니다.

그래서 에디 레드메인이 킬러를 연기한다는 소식을 봤을 때 꽤 궁금했습니다.

그것도 스나이퍼.

킬러와 스나이퍼.

단어만 놓고 봐도 끌리는 조합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약간의 의심도 있었습니다.

에디 레드메인이?

제가 가지고 있던 배우의 이미지는 아무래도 왜소한 쪽에 가까웠습니다.

강한 육체적 카리스마를 내세우는 배우도 아니고, 총을 들고 상대를 위압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지지도 않았습니다.

저 사람이 장거리 저격총을 들면 오히려 총이 더 커 보이는 거 아닌가.

냉정한 킬러라기보다 불안해 보이는 킬러가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아주 잠깐 했습니다.

그리고 《자칼의 날》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시청 소감부터 말하면,

강추입니다.

그런데 칭찬하기 전에 단점부터 말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드라마의 단점이 꽤 명확하고, 동시에 그 단점이 왜 별로 중요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는 게 제가 이 작품을 재미있게 본 이유와 정확히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추격극인데 쫓는 쪽이 약합니다

《자칼의 날》은 기본적으로 추격극입니다.

프로 킬러가 있습니다.

그를 찾아야 하는 정보기관이 있습니다.

한쪽은 도망가고.

한쪽은 추적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양쪽이 강해야 재미있습니다.

쫓기는 사람이 영리하면 쫓는 사람도 영리해야 하고, 쫓기는 사람이 미쳐 있으면 쫓는 사람도 어느 정도 미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팽팽합니다.

제가 이런 구조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캐릭터는 《프리즌 브레이크》의 알렉산더 마혼입니다.

시즌 2부터 등장해서 탈옥수들을 쫓는 FBI 요원.

이 사람이 좋았던 이유는 단순히 유능해서가 아닙니다.

쫓기는 주인공들만큼 위험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스코필드가 머리를 굴리면 마혼도 따라옵니다.

주인공들이 한발 앞서간 것 같으면 어느새 그 사람이 바로 뒤에 있습니다.

그래서 도망치는 쪽의 능력까지 더 크게 느껴집니다.

좋은 추격자는 주인공을 방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인공을 더 대단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입니다.

그 기준에서 《자칼의 날》은 아쉽습니다.

자칼을 추적하는 비앙카 풀먼이라는 캐릭터가 제게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배우 라샤나 린치의 문제가 아닙니다.

연기를 못한다고 느낀 것도 아닙니다.

그냥 캐릭터가 약합니다.

집요하기는 합니다.

능력도 있습니다.

사건을 따라가는 기능도 충분히 합니다.

그런데 화면에 등장했을 때 기대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이번에는 자칼을 어디까지 몰아붙일까.”

이 감정보다는,

“그래서 다음에 자칼은 뭘 하지?”

이쪽으로 계속 마음이 갑니다.

추격극에서 이건 꽤 치명적입니다.

관객이 양쪽을 동시에 보고 싶은 게 아니라 한쪽만 보고 싶어지니까요.

비앙카가 자칼에게 다가갈수록 긴장해야 하는데, 저는 자칼 화면으로 빨리 돌아갔으면 했습니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약점입니다.

쫓는 쪽이 쫓기는 쪽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보통은 이러면 드라마가 늘어집니다

추격전의 한쪽이 약하면 이야기가 쉽게 단조로워집니다.

어차피 주인공이 더 영리하고.

어차피 주인공이 더 매력적이고.

어차피 잡는 쪽이 계속 한발 늦습니다.

몇 번 반복하면 패턴이 보입니다.

자칼이 계획을 세운다.

누군가 눈치챈다.

쫓아간다.

자칼이 빠져나간다.

또 쫓는다.

이걸 10편이나 하면 보통은 지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칼의 날》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자칼이 너무 멋집니다.

에디 레드메인이 연기하는 자칼이라는 인물이 혼자서 대부분을 해버립니다.

추격극의 균형이 잘 맞아서 재미있는 게 아닙니다.

균형이 기울어져 있는데 기울어진 쪽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냥 봅니다.

이게 이 드라마의 이상한 힘입니다.

스토리는 솔직히 아는 맛입니다

이 작품의 이야기가 아주 참신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원작 자체가 오래된 작품입니다.

프레더릭 포사이스가 1971년에 소설 《자칼의 날》을 발표했고, 1973년에 이미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 기본 구조부터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전문 암살자.

표적.

치밀한 준비.

가짜 신분.

추적하는 정보기관.

조금씩 좁혀오는 수사망.

킬러는 그걸 피해 다시 움직입니다.

우리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조합은 아닙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익숙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작품을 보면서 꼭 새로움을 요구해야 하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음식도 그렇잖아요.

처음 먹어보는 요리만 맛있는 건 아닙니다.

김치찌개 맛을 안다고 김치찌개를 안 먹는 것도 아니고.

삼겹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고 삼겹살집에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맛을 압니다.

그래서 먹습니다.

《자칼의 날》이 딱 그렇습니다.

아는 맛이 맛있습니다.

그리고 아는 맛의 가장 큰 장점은 재료 하나만 좋아도 된다는 겁니다.

레시피는 이미 압니다.

그러면 고기가 좋으면 됩니다.

여기서는 그 고기가 에디 레드메인입니다.

자칼 한 접시가 상을 거의 다 차립니다

자칼은 단순히 총을 잘 쏘는 킬러가 아닙니다.

준비합니다.

관찰합니다.

신분을 바꿉니다.

얼굴을 바꿉니다.

목소리를 바꿉니다.

사람에 따라 표정도 달라집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그냥 평범한 남자처럼 보이고.

어떤 장면에서는 냉정한 전문가가 되고.

가족 앞에서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임무를 시작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에디 레드메인이라는 배우와 이 역할이 참 잘 만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배우가 원래 가장 잘하는 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스티븐 호킹을 연기할 때도 그랬습니다.

릴리 엘베를 연기할 때도 그랬습니다.

자기 몸을 자기 것처럼 쓰지 않는 배우입니다.

역할에 따라 조금씩 다시 조립합니다.

그런 배우에게 이번에는 ‘정체를 계속 바꾸며 살아가는 킬러’를 줬습니다.

어쩌면 너무 뻔할 정도로 잘 맞습니다.

자칼은 작품 속에서 매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고.

레드메인은 배우로서 매번 다른 사람이 되는 데 강합니다.

배우와 캐릭터가 하는 일이 같습니다.

그래서 변장도 단순한 분장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얼굴만 바꾸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이 부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자칼은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연기합니다.

에디 레드메인은 자칼을 보여주기 위해 또 연기합니다.

그러니까 한 장면 안에서 배우가 배우를 연기하는 셈입니다.

그 맛이 꽤 좋습니다.

총을 든 에디 레드메인이 걱정됐다고요?

제가 처음에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에디 레드메인이 스나이퍼?

너무 왜소하지 않나.

카리스마가 부족하지 않을까.

총이 안 어울리는 것 아닐까.

다 보고 나서 그 걱정이 어떻게 됐느냐고 묻는다면,

“괜한 걱정이었어요.”

라고 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조금 정확하지 않습니다.

저는 기우였다고 깨달은 게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었습니다.

이게 더 정확합니다.

보다가,

“어, 생각보다 총이 잘 어울리네.”

이런 순간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냥 처음부터 봤습니다.

저 사람이 왜소한 배우였다는 것도 잊고.

총을 든 모습이 안 어울릴까 걱정했다는 것도 잊고.

그냥 자칼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이 글을 쓰려고 처음 느낌을 다시 정리하다가 그제야,

‘아 맞다. 처음에는 저런 걱정을 했었지.’

하고 떠올랐습니다.

저한테는 이게 배우에 대한 꽤 큰 칭찬입니다.

선입견을 깨는 연기도 좋지만,

선입견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게 만드는 연기는 더 좋습니다.

총을 든 에디 레드메인을 본 게 아니라 총을 든 자칼을 봤다는 뜻이니까요.

왜소한 몸이 오히려 더 잘 어울립니다

오히려 생각해보면 자칼에게 우락부락한 몸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힘으로 사람을 제압하는 킬러가 아닙니다.

눈에 띄면 안 됩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야 합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해야 합니다.

지나간 다음 사람들이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야 합니다.

그러니 에디 레드메인의 외형이 오히려 장점일 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살벌하게 생긴 사람이 공항에 서 있으면 눈에 띕니다.

“저 사람 뭔가 위험해 보여.”

이러면 킬러로서는 실격입니다.

자칼은 위험해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위험하지 않아 보이는데 위험해야 합니다.

에디 레드메인은 그 차이를 꽤 자연스럽게 만듭니다.

평범하게 웃고 있을 때는 정말 평범한 사람 같은데, 총을 잡고 준비하는 순간 전혀 다른 얼굴이 됩니다.

이 변화가 좋았습니다.

카리스마라는 게 꼭 덩치와 굵은 목소리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이 사람의 카리스마는 정확함에서 나옵니다.

실수가 없어 보이는 사람.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

그런 사람 특유의 차가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이 너무 세면 상대가 더 약해 보입니다

여기서 다시 비앙카 이야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어쩌면 제가 이 캐릭터를 별로라고 느낀 이유에는 자칼이 너무 좋은 것도 포함돼 있을 겁니다.

한쪽 배우와 캐릭터가 너무 강합니다.

그러면 맞은편이 웬만큼 해서는 부족합니다.

자칼이 화면에 나오면 매번 새로운 걸 합니다.

계획을 짜고.

신분을 바꾸고.

사람을 속이고.

가족 문제까지 보여줍니다.

반면 추적자는 기본적으로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고, 쫓습니다.

역할의 성격부터 불리합니다.

문제는 그 불리함을 뒤집을 만큼 독특한 매력을 캐릭터가 보여주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마혼은 그걸 했습니다.

처음에는 추적자였는데 어느 순간 그 사람 자체가 궁금해집니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어디까지 갈지.

저 사람이 주인공을 잡을 수 있을지.

그래서 마이클 화면과 마혼 화면을 번갈아 봐도 긴장이 끊기지 않습니다.

《자칼의 날》은 그 정도까지는 못 갔습니다.

저는 거의 계속 자칼 쪽이 궁금했습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추격극으로서는 균형이 좋지 않습니다.

한쪽이 너무 셉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게 약점인데도 작품 전체를 망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구멍을 메운 게 아니라 구멍을 안 보이게 합니다

보통 작품의 단점이 있으면 배우가 그 단점을 메웠다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자칼의 날》에서 에디 레드메인이 한 일은 조금 다릅니다.

구멍을 메우지는 않았습니다.

비앙카 캐릭터가 갑자기 더 재미있어지는 것도 아니고.

추격전의 균형이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구멍은 그대로 있습니다.

다만 자칼 쪽을 너무 화려하게 차려놓으니 그 구멍을 쳐다볼 시간이 없습니다.

식탁으로 치면 반찬 하나가 별로입니다.

그런데 메인 요리가 너무 좋습니다.

그러면 반찬에는 젓가락이 잘 안 갑니다.

반찬이 맛있어진 게 아닙니다.

그냥 안 먹는 겁니다.

《자칼의 날》이 제게 딱 그랬습니다.

비앙카 캐릭터가 약합니다.

분명 단점입니다.

하지만 자칼이 나오면 다시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또 봅니다.

또 비앙카가 나옵니다.

조금 심심합니다.

다시 자칼이 나옵니다.

괜찮아집니다.

이걸 10편 합니다.

그리고 저는 결국 강추라고 씁니다.

편식도 이 정도면 취향입니다.

골든글로브가 둘 다 올렸다고요

이 작품은 골든글로브에서 드라마 시리즈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완성도도 있고, 제작 규모도 좋고, 전체적인 만듦새도 안정적입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인 감상만 놓고 본다면 조금 다릅니다.

저라면 남우주연상 쪽만 강하게 밀었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 전체를 좋아했지만,

제가 좋아했던 드라마의 상당 부분이 에디 레드메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건 작품에 대한 칭찬이면서 동시에 조금 짓궂은 평가입니다.

작품 전체가 뛰어나서 배우가 빛난 것인지.

배우가 너무 빛나서 작품 전체가 좋아 보인 것인지.

저에게는 후자 쪽이 조금 더 큽니다.

물론 배우를 제대로 쓰는 것도 작품의 능력입니다.

에디 레드메인을 데려다가 이런 역할을 맡긴 순간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입니다.

그러니 너무 억울해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아는 맛이라 더 편합니다

이야기가 익숙하다는 점도 저는 크게 단점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모든 작품이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특히 장르물은 그렇습니다.

첩보물.

암살자.

추격전.

스나이퍼.

위장 신분.

이런 건 이미 수도 없이 봤습니다.

관객도 규칙을 압니다.

킬러가 총을 조립하기 시작하면 곧 뭔가 벌어진다는 걸 알고.

가짜 신분증이 나오면 언젠가 들킬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고.

수사기관이 점점 가까워지면 결국 같은 공간에 있게 될 것도 압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예상 가능해집니다.

그런데 예상할 수 있다는 게 꼭 재미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익숙한 틀 안에서 누가 그걸 하느냐가 중요해집니다.

《자칼의 날》은 거기에서 성공했습니다.

스토리가 놀라워서 보는 게 아닙니다.

자칼이 그 상황을 어떻게 통과하는지 보는 겁니다.

어떤 얼굴을 쓸지.

누구를 속일지.

어떻게 총을 쏠지.

위기에서 무슨 선택을 할지.

제가 기대한 재미를 아주 정직하게 줍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새로운 맛집은 아니지만,

자주 먹던 메뉴를 아주 잘하는 집 같습니다.

그 정도면 다시 갑니다.

시즌 2도 볼 겁니다

시즌 2도 예정돼 있습니다.

저는 볼 겁니다.

고민할 것도 별로 없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해서라기보다,

그냥 이 자칼을 한 번 더 보고 싶습니다.

아는 맛이니까요.

아마 시즌 2에서도 자칼은 또 얼굴을 바꾸고.

다른 이름을 쓰고.

누군가를 속이고.

총을 들 겁니다.

저는 그걸 압니다.

그래도 봅니다.

김치찌개 시키면서 이번에는 갑자기 카레 맛이 날 걸 기대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잘하는 걸 계속 잘하면 됩니다.

다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반찬은 좀 바꿔주세요.

추격극인 만큼 이번에는 자칼만큼 화면을 잡아먹는 상대를 붙여줬으면 합니다.

자칼이 도망가는 장면만 기다리게 하지 말고,

누가 쫓아오는 장면도 기다리게 해줬으면 합니다.

메인은 그대로 두세요.

그건 건드릴 필요 없습니다.

에디 레드메인의 자칼은 이미 충분히 맛있습니다.

이 작품은 아는 맛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는 맛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맛있으면 또 먹습니다.

이 글은 볼까pick 운영자의 개인적인 감상과 의견입니다. 작품 페이지의 「호불호 정리」는 찬반 양쪽을 균형 있게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칼럼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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