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악마판사, 정의를 심판대가 아니라 무대 위에 올려놓은 드라마

스토리는 조금씩 희미해져도 캐릭터의 목소리가 이렇게 오래 남는 드라마는 흔하지 않습니다

2026년 9월 14일운영자 개인 의견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면 조금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김은숙, 박경수, 그리고 문유석.

세 사람의 작품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대사가 오래 남습니다.

예쁜 말을 잘 쓴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인물이 어떤 인간인지, 무엇을 욕망하는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대사 한두 마디에 아주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누군가는 사랑을 말할 때 자기 세계관을 드러내고, 누군가는 권력을 이야기하면서 본색을 보이고, 누군가는 정의를 입에 올리는 순간 오히려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들켜 버립니다.

저는 아마 그런 작가들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인물에게 단순히 말을 시키는 게 아니라, 말을 무기로 쥐여 주는 작가들.

『악마판사』의 문유석 작가도 그렇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난 뒤 구체적인 사건보다 이상하리만큼 많은 대사들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겁니다.

법정에 카메라를 들이밀어 버렸습니다

『악마판사』의 출발부터 상당히 독특합니다.

재판을 전 국민에게 생중계하고, 국민이 그 과정을 지켜보며 사실상 하나의 거대한 쇼처럼 소비하는 세계.

법정과 예능 프로그램을 섞어 놓은 것 같은 설정입니다.

생각해 보면 꽤 무서운 발상입니다.

재판은 원래 차갑고 복잡해야 합니다. 증거를 따지고 법리를 검토하고, 때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결론과 다른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카메라가 들어갑니다.

박수가 들어가고, 시청률이 들어가고, 대중의 감정이 들어갑니다.

그 순간 정의는 아주 위험한 물건이 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정의와 법이 말하는 정의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강요한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악마판사』가 재미있었던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지성이 연기한 강요한은 전형적인 정의의 사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영리해서 불안한 사람에 가깝습니다.

대중이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 알고, 어떤 장면에서 분노하고 어떤 장면에서 환호하는지 압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합니다.

법을 다루는 판사인데 사람의 감정을 읽고 움직이는 방식은 정치인이나 연출가에 더 가깝습니다.

이 사람에게 법정은 단순히 판결을 내리는 공간이 아닙니다.

무대입니다.

그리고 강요한은 판사이면서 동시에 그 무대의 가장 뛰어난 쇼맨입니다.

이 설정 하나만으로도 저는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정의를 말하는데 이상하게 사람이 무섭습니다

첨부해 둔 대사들을 다시 보니 제가 당시 이 드라마에서 무엇을 재미있게 봤는지도 조금 보입니다.

책임, 권력, 돈, 탐욕, 정의, 인간의 선택.

좋아했던 문장들이 거의 전부 그쪽에 몰려 있습니다.

『악마판사』는 인간을 그다지 낭만적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사람은 이성적이기보다 욕망에 흔들리고, 옳은 말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을 더 쉽게 믿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탐욕을 명분으로 포장하고, 때로는 자신이 저지르는 일을 정말 정의라고 믿어 버립니다.

꽤 냉소적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선한 사람이 선한 마음으로 악인을 물리치는 이야기도 좋지만, 『악마판사』처럼 정의라는 단어 자체를 한 번 의심해 보는 이야기는 조금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특히 강요한이라는 인물이 그렇습니다.

이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고 있으면 계속 판단이 흔들립니다.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방법이 위험합니다.

틀린 방법을 쓰는 것 같은데 결과만 보면 통쾌합니다.

그래서 자꾸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그래도 저 정도는 해도 되는 것 아닌가?’

저는 이 질문이야말로 『악마판사』가 관객에게 파놓은 함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 속 대중이 강요한의 재판에 열광하는 것처럼, 보고 있는 저 역시 어느 순간 강요한에게 박수를 치고 있으니까요.

드라마는 정의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정의를 소비하는 사람까지 슬쩍 시험합니다.

그 점이 꽤 재미있었습니다.

지성은 이런 인물을 참 잘합니다

그리고 이런 강요한을 지성이 연기합니다.

잘 어울립니다.

아주 많이.

지성은 감정을 크게 터뜨리는 장면도 잘하지만, 저는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더 재미있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을 가만히 바라보거나, 조금 비웃듯 웃거나, 말하기 전에 잠깐 침묵하는 순간.

그 짧은 틈에서 이 인물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듭니다.

강요한에게 특히 필요한 연기였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패를 쉽게 보여주면 안 됩니다.

선한지 악한지, 진심인지 연기인지, 복수인지 정의인지 끝까지 완전히 한쪽으로 정리되면 재미가 없어지는 캐릭터니까요.

지성은 그 애매한 선을 꽤 오랫동안 잘 붙잡고 갑니다.

정장을 입고 법정에 앉아 있기만 해도 위압감이 있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상대를 압박합니다.

주인공이 가진 카리스마가 이야기의 설득력과 직결되는 드라마가 있는데, 『악마판사』가 정확히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강요한이 매력적이지 않았다면 이 설정 전체가 상당히 허무해졌을 겁니다.

김민정은 악역인데도 자꾸 보고 싶었습니다

정선아를 연기한 김민정도 정말 좋았습니다.

정선아는 단순한 악역이 아닙니다.

욕망을 숨길 생각도 별로 없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사람을 이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밋밋한 악당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김민정 특유의 말투와 표정이 캐릭터에 묘한 장난기를 더하기 때문입니다.

잔인한 일을 하면서도 지나치게 무게를 잡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볍게 웃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상대의 약점을 찌릅니다.

그래서 더 위험해 보입니다.

저는 『악마판사』가 재미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악역들에게도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멋있기 위해 악당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악당 역시 자기 욕망으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강요한과 정선아가 마주하는 장면에는 단순한 선악 대결과 조금 다른 긴장감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을 이용하려 하고, 두 사람 모두 사람의 욕망에 대해 꽤 잘 압니다.

어쩌면 서로 너무 잘 알아서 더 위험한 관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장영남이 등장하면 공기가 달라집니다

차경희를 연기한 장영남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가 원래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하지만, 이런 역할에서 장영남은 정말 강합니다.

말을 세게 하는 것과 센 사람을 연기하는 것은 다릅니다.

큰 소리를 낸다고 권력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장영남은 가만히 앉아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느끼게 하는 배우입니다.

차경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정치적 욕망과 권력에 대한 집착,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절대로 놓지 않으려는 인간의 얼굴을 굉장히 날카롭게 보여줍니다.

『악마판사』에는 유독 권력을 가진 인물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모두 권력을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겁니다.

강요한은 대중의 감정을 이용하고, 정선아는 욕망과 관계를 이용하며, 차경희는 제도와 지위를 이용합니다.

같은 권력인데 얼굴이 다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이면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힘겨루기가 됩니다.

저는 이런 장면을 좋아합니다.

총을 쏘지 않아도 누가 밀리고 있는지 보이는 장면.

한 문장이 칼처럼 들어가는 장면.

아마 그래서 문유석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허중세가 입을 엽니다

그런데 지금 『악마판사』를 떠올렸을 때 가장 독특하게 남아 있는 배우를 한 명 고르라면 저는 백현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허중세.

정말 대단한 캐릭터였습니다.

이 작품을 보기 전까지 저는 백현진이라는 배우에게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허중세를 보고 나서는 달라졌습니다.

이후 다른 작품에서 백현진이 등장하면 얼굴보다 먼저 목소리에 반응하게 됐습니다.

‘아, 허중세.’

특유의 발성이 있습니다.

문장 끝을 묘하게 늘이기도 하고, 단어에 예상하지 못한 힘을 주기도 하고, 멀쩡한 말을 하는데 어딘가 기분 나쁜 리듬을 만듭니다.

글자로 적으면 평범한 문장인데 백현진이 말하면 갑자기 허중세의 문장이 됩니다.

저에게 좋은 연기의 기준 가운데 하나가 이것입니다.

배우가 캐릭터에게 목소리를 하나 만들어 주는 것.

그리고 그 목소리를 작품이 끝난 뒤에도 기억하게 만드는 것.

허중세가 정확히 그랬습니다.

과장된 캐릭터인데도 단순히 우스꽝스럽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웃깁니다.

그런데 계속 보다 보면 불쾌합니다.

조금 더 지나면 무섭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사람이 권력을 손에 쥐었을 때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히려 완벽하게 냉정하고 카리스마 있는 독재자보다 허중세 같은 인물이 더 현실적으로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사람들이 웃어주면 자신이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박수를 쳐주면 자신의 말이 옳다고 믿으며, 권력을 가지면 자기 욕망까지 국민을 위한 선택이라고 착각하는 인간.

그런 인물을 백현진이 정말 독특하게 만들었습니다.

연기라기보다 한 사람을 새로 발명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제게는 이 작품이 백현진이라는 배우를 확실하게 기억하게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후 다른 드라마에서 비슷한 발성을 듣는 순간 허중세가 먼저 떠오르는 것을 보면, 캐릭터가 얼마나 강하게 남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배우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목소리를 들으면 대통령부터 생각나니까요.

결국 제가 좋아하는 건 이런 사람들인가 봅니다

생각해 보면 『악마판사』는 취향에 꽤 정확하게 들어맞는 드라마였습니다.

스토리부터 평범하지 않았고,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여러 명 나왔습니다.

지성, 김민정, 장영남.

거기에 예상하지 못했던 백현진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의 입에는 문유석 작가가 써준 말들이 있었습니다.

좋아하지 않기가 더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악마판사』의 모든 설정이 현실적으로 촘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과장되어 있는 부분도 많고, 법정물의 사실성을 기대하면 당황스러운 장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작품이 하고 싶었던 것은 현실의 법정을 그대로 재현하는 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법과 권력, 대중과 미디어, 정의와 욕망을 한 무대 위에 올려놓은 뒤 그 모든 것이 서로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보여주는 것.

저에게 『악마판사』의 재미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국 남아 있는 것도 사람들입니다.

강요한의 눈빛.

정선아의 웃음.

차경희의 서늘함.

그리고 허중세의 그 이상한 목소리.

스토리는 조금씩 희미해져도 캐릭터의 목소리가 이렇게 오래 남는 드라마는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끔 백현진이 다른 작품에 등장해 입을 여는 순간 저도 모르게 웃게 됩니다.

아무리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이름으로 등장해도 잠깐 허중세가 돌아온 것 같아서요.

아마 『악마판사』를 다시 떠올리게 되는 순간도 앞으로는 대부분 그렇게 찾아올 것 같습니다.

화려한 법정도, 생중계 재판도 아닌—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그 독특한 목소리 때문에.

이 글은 볼까pick 운영자의 개인적인 감상과 의견입니다. 작품 페이지의 「호불호 정리」는 찬반 양쪽을 균형 있게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칼럼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다른 칼럼도 있습니다

칼럼 전체 보기 (47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