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보건교사 안은영, 이상한데 왜 나는 안 빠져들었을까

젤리는 많이 봤는데 정작 먹고 싶은 젤리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2026년 9월 14일운영자 개인 의견

『보건교사 안은영』을 다 보고 난 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꽤 단순했습니다.

정말 이상한 드라마구나.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이상한 작품이 반드시 재미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남들과 다른 상상력을 보여주는 것과 그 상상력 안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니까요. 『보건교사 안은영』은 전자에는 꽤 성공했습니다. 어디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화면을 만들어냈고, 한국 드라마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방식으로 이야기를 밀어붙입니다.

그런데 저는 끝내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구경은 했습니다.

끝까지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좋아하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젤리가 보이는데, 저는 아무 감흥이 없습니다

안은영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보입니다.

사람들의 욕망과 감정, 기운 같은 것이 형형색색의 젤리 형태로 나타나고, 은영은 장난감 칼과 비비탄총을 들고 그것들과 싸웁니다.

설명만 들으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보건교사가 학교를 돌아다니며 보이지 않는 괴물과 싸운다니.

심지어 무기까지 장난감입니다.

이 정도면 시작부터 정상적인 드라마가 될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 낯섦이 어디까지 갈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화면이 기괴해질수록 제 감정은 차분해졌습니다.

커다란 젤리가 나오고, 학교가 이상한 기운에 휩싸이고, 학생들이 집단으로 기묘한 행동을 하는데 저는 화면을 보면서 자꾸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게 나한테 왜 중요한 거지?’

판타지에는 세계관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세계를 믿고 싶게 만드는 감정입니다.

용이 날아다녀도 누군가를 걱정하게 된다면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고, 귀신이 나와도 그 사람의 슬픔이 이해되면 현실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보건교사 안은영』은 독특한 것을 보여주는 데에는 아주 적극적인 반면, 제가 그것에 마음을 붙일 시간은 좀처럼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젤리는 많이 봤는데 정작 먹고 싶은 젤리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유미도 남주혁도 멀쩡한데, 이상하게 사람이 안 남습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정유미가 아니었다면 안은영이라는 인물을 이 정도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도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장난감 칼을 들고 복도를 뛰어다니는 보건교사.

자칫하면 배우가 캐릭터보다 먼저 민망해질 수 있는 설정인데, 정유미는 그 이상한 세계에서 혼자 너무 진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캐릭터를 희화화하지도 않습니다.

남주혁 역시 한문교사 홍인표 특유의 어딘가 맹하고 느긋한 분위기를 무난하게 살립니다.

그런데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묘한 느낌이 듭니다.

분명 캐릭터가 독특한데, 이상하게 인물 자체에는 깊이 정이 붙지 않습니다.

보통 드라마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사건보다 사람입니다.

주인공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보다 그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가 남고, 어떤 설정이 있었는지보다 둘 사이의 관계가 기억에 남습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에는 인상적인 설정은 많았지만 제게 오래 남은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인공보다 잠깐씩 등장하는 괴상한 학생이나 주변 인물이 더 선명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정상적인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이상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도 특별하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상함에도 인플레이션이 있다는 걸 여기서 알았습니다.

친절하지 않은 것과 매력적인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저는 작품이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설명이 적은 작품을 좋아할 때도 많습니다.

관객에게 약간의 빈칸을 남겨두고, 그 안을 스스로 채우게 만드는 이야기는 꽤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면서는 빈칸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보다 그냥 빈칸으로 놔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 자주 들었습니다.

이 둘은 꽤 큰 차이입니다.

작품은 계속 자기 방식대로 앞으로 갑니다.

설명할 생각도 별로 없고, 시청자가 따라오지 못한다고 해서 기다려줄 마음도 없어 보입니다.

여기까지는 하나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제가 그 스타일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겁니다.

감독에게는 분명한 세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전 작품에서도 그 세계에 잘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미쓰 홍당무』나 『비밀은 없다』를 봤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연기하는 배우는 좋았고 몇몇 장면은 강렬했지만, 작품 전체와 제가 친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면서 어느 순간 조금 체념했습니다.

아.

이번에도 우리는 친구가 되기는 어렵겠구나.

취향은 설득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니까요.

끝까지 본 것이 칭찬인지 오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1화를 보고 계속 볼지 고민했습니다.

재미없는 드라마를 굳이 끝까지 볼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볼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2화를 봤습니다.

그리고 3화까지 왔습니다.

여기까지 오니 이상한 계산이 시작됩니다.

전체가 6부작입니다.

벌써 절반을 봤습니다.

이쯤 되면 포기하는 것도 조금 억울합니다.

아마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만든 가장 강력한 힘은 스토리도 캐릭터도 아니고 ‘6부작’이라는 숫자였던 것 같습니다.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입니다.

12부작이었다면 저는 아마 중간에 아주 평화롭게 헤어졌을 겁니다.

그래도 끝까지 보면서 아주 조금은 기대했습니다.

마지막쯤에는 지금까지의 기묘함이 한곳으로 모이면서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고.

혹은 갑자기 어떤 캐릭터에게 마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고.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마지막 회를 보고 난 뒤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완주한 이유는 재미있어서라기보다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서였다는 것을.

이렇게 적고 보니 드라마 입장에서는 별로 기분 좋은 완주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런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건 좋습니다

그렇다고 『보건교사 안은영』 같은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이런 드라마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모순적으로 들리겠지만, 제가 싫어하는 작품도 존재할 가치가 있습니다.

모든 드라마가 비슷한 이야기와 익숙한 연출만 반복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지루합니다.

누군가는 실패할 정도로 이상한 시도를 해야 하고, 누군가는 “대체 누가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했지?” 싶은 작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끔 정말 새로운 것이 튀어나옵니다.

그런 점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은 꽤 반가운 작품입니다.

제가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과 이런 작품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충분히 동시에 가능합니다.

특히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소재와 미술, 캐릭터, 연출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밀어붙였다는 점은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흥행 공식을 안전하게 조립한 드라마는 아닙니다.

적어도 자기 얼굴은 확실합니다.

문제는 그 얼굴이 제 취향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어쩌면 일본어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보다 보면 묘하게 일본 드라마나 일본 영화에서 느꼈던 감각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애매하고, 인물들은 심각한 상황에서도 묘하게 태평하며, 화면에서는 뜬금없는 이미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옵니다.

그래서 장난삼아 일본어 더빙으로도 잠깐 봤는데 놀랍게도 별로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순간적으로 원래 이런 작품이었나 싶은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한국 고등학교에서 정유미와 남주혁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귀에는 일본어가 들립니다.

정상이라면 꽤 이질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는 그것마저 대충 어울립니다.

역시 이상한 드라마입니다.

심지어 더빙 언어를 바꿔도 이상함의 총량이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일관성 하나는 인정해야 합니다.

결국 이상함은 취향의 문제였습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마 이 작품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에게 제가 싫어했던 부분을 말하면, 바로 그 부분이 좋았다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설명하지 않는 것.

엉뚱하게 움직이는 캐릭터.

예측하기 힘든 장면.

유치함과 기괴함 사이를 오가는 이미지.

저에게 단점이었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이 드라마를 사랑하는 이유일 겁니다.

그런 작품은 평가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못 만든 드라마라고 잘라 말하기에는 자기 색깔이 너무 분명하고, 좋은 드라마라고 말하기에는 저는 너무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취향이라는 편리하고도 정확한 단어를 꺼낼 수밖에 없습니다.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아주 많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도 이 드라마의 몇몇 장면은 기억납니다.

좋아서 기억하는 건 아닙니다.

너무 이상해서 뇌가 삭제하지 못한 쪽에 가깝습니다.

아마 그것도 『보건교사 안은영』만의 힘이라면 힘일 겁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드라마는 재미없으면 그냥 잊힙니다.

이 드라마는 재미없었는데도 가끔 생각납니다.

그렇게 따지면 완전히 실패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시 보겠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확실합니다.

아니요.

젤리는 한 번이면 충분했습니다.

이 글은 볼까pick 운영자의 개인적인 감상과 의견입니다. 작품 페이지의 「호불호 정리」는 찬반 양쪽을 균형 있게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칼럼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다른 칼럼도 있습니다

칼럼 전체 보기 (47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