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해변에서 혼자, 작품만 보겠다는 다짐이 실패하는 영화
홍상수의 날 것이 이 작품에서만 다르게 작동합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꼽으라면 저는 대체로 두 가지를 말합니다.
날것.
그리고 대사.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둘은 완전히 다른 장점이 아닙니다.
홍상수 영화에서 대사가 살아 있는 이유는 대부분 너무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더 자주 합니다. 술이 조금 들어가고,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누군가에게 서운한 마음이 차오르면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말을 기어이 꺼냅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런 말 하나가 그 사람을 전부 설명할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점잖은 척하던 사람이 술자리에서 갑자기 유치해지고, 사랑을 이야기하던 사람이 자존심 때문에 상대를 찌르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던 사람이 별것 아닌 말에 무너집니다.
홍상수 영화에는 그런 순간이 많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관리하던 얼굴을 잠깐 놓쳐버리는 순간.
저는 그걸 좋아합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도 그런 의미에서는 제가 좋아하던 홍상수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번에는 그 ‘날것’을 날것으로만 볼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작품만 보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꽤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영화는 영화로 보자.
감독과 배우에 관한 현실의 이야기는 잠깐 치워두고,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일만 보자.
그게 가장 공정한 태도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실패했습니다.
영화 속 영희는 유부남 영화감독과의 관계가 끝난 뒤 혼자 시간을 보내는 여배우입니다.
그 역할을 김민희가 연기합니다.
이 정도가 겹쳐 있는 작품을 두고 현실을 완전히 잊은 채 순수하게 허구만 보겠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장면 하나를 보면 현실의 일이 떠올랐고,
대사 하나를 들으면 그 대사를 쓴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자전적인 이야기인가.’
‘변명인가.’
‘자기합리화인가.’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인물의 말이고 어디부터가 실제 사람의 말처럼 읽혀야 하는가.’
영화를 보는 동안 이런 질문들이 계속 따라붙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것들을 밀어내려고 아주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영화만 보겠다고 말은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미 영화 밖을 같이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 실패가 당연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작품과 현실을 제대로 분리하지 못한 것 같아 조금 찜찜했습니다.
관객이라면 화면에 있는 것만 봐야 하는데 괜히 사생활을 끌어들여 영화를 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분리해서 보기 어렵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유부남 영화감독과의 관계가 끝난 여배우.
그 역할을 맡은 실제 배우.
그리고 그 영화를 만든 감독.
이 요소들이 너무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그 상태에서 관객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척 영화를 보라고 요구하는 편이 더 이상합니다.
적어도 제게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현실의 맥락을 지우면 비로소 순수해지는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그 맥락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상의 일부가 되는 영화였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작품과 현실을 분리하는 데 실패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 영화가 만들어 놓은 자리에 그대로 들어간 것인지도 모릅니다.
떼어놓으려고 할수록 더 붙어 보이는 영화.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홍상수의 ‘날것’이 여기서는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오래 생각한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홍상수 영화에는 술자리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술자리에서 사람들은 평소에는 하지 않을 말을 합니다.
누군가를 공격하고,
자신을 변호하고,
갑자기 사랑을 이야기하다가,
다음 순간에는 아주 치사한 사람이 됩니다.
평소의 홍상수 영화에서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웃곤 했습니다.
‘인간이라는 게 참.’
그러다가 곧바로,
‘나라고 다를까.’
조금 찔립니다.
그게 홍상수 영화가 사람을 관찰하는 방식의 재미였습니다.
인물이 하는 말은 그 인물의 민낯입니다.
그런데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는 같은 방식이 다른 효과를 냅니다.
영희가 술자리에서 사람들에게 감정을 쏟아내고,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사랑에 대해 말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가 다시 자신을 변호할 때 저는 그 말을 온전히 ‘영희라는 인물의 민낯’으로만 들을 수 없었습니다.
자꾸 실제 누군가의 항변처럼 들렸습니다.
그 순간부터 대사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평소 홍상수 영화에서 술 취한 사람이 무언가를 말하면 저는 그 사람의 못난 구석을 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같은 종류의 말을 들으면서도 자꾸 질문하게 됩니다.
이건 자책일까.
변명일까.
고백일까.
억울함일까.
스스로를 이해해 달라는 말일까.
아니면 이해를 구하는 척하면서 이미 스스로를 용서한 사람의 말일까.
같은 도구인데 전혀 다른 긴장이 생깁니다.
평소에는 인간의 민낯을 드러내던 장치가 여기에서는 실제 사람의 진술처럼 들립니다.
저는 그게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한 지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가장 불편한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정직한 것인지 영리한 것인지 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이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아주 쉽게 두 극단으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것을 대단히 솔직한 자기고백으로 보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알고도 그 이야기를 영화 한가운데로 가져왔으니 최소한 숨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대단히 영리한 자기방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영화라는 형식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먼저 이야기해 버리고, 그 안에서 스스로에게 유리한 언어를 확보했다고 볼 수도 있겠죠.
저는 둘 중 하나를 골라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직함과 자기합리화는 언제나 반대말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솔직하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진심으로 상처받았으면서 동시에 자신이 누군가에게 준 상처에는 둔감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 속 사람이라고 특별히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이 변명인지 고백인지 판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굳이 판정해야 할 필요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영화를 보는 사람마다 다른 곳에서 결론 내릴 문제일 겁니다.
저에게 더 흥미로운 건 왜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자꾸 그런 판정을 하고 싶어지는가였습니다.
어느 순간 그냥 듣기로 했습니다
보다가 어느 순간 마음을 바꿨습니다.
판정을 조금 미뤄두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계속 분류하려고 했습니다.
이 대사는 변명.
이 장면은 자기연민.
저 표정은 후회.
이건 억울함.
그런데 그렇게 보기 시작하면 모든 장면이 이미 정해 둔 결론을 확인하는 증거로만 보입니다.
‘이 영화는 변명이다’라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모든 말은 변명이 됩니다.
반대로 ‘이건 솔직한 고백이다’라고 정해 놓으면 어떤 장면을 봐도 용기 있는 고백처럼 읽힙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보고 나면 영화를 본 건지, 처음 내린 결론에 밑줄을 친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인물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떻게 말하는지.
말을 한 다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상대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옳은 말인가를 따지는 대신 그 사람이 지금 저 말을 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상태인가를 보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그랬더니 뒤늦게 배우가 보였습니다.
김민희라는 배우를 보는 일이 이상하게 복잡해졌습니다
저는 《아가씨》 이후의 김민희를 꽤 인상적인 배우로 봤습니다.
그리고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도 그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김민희는 이 작품으로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여자연기자상을 받았습니다.
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굳이 가져오지 않더라도 영화 안에서 보여 주는 연기를 보고 있으면 왜 평가받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특히 감정을 크게 보여 주는 순간보다 그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고 남겨두는 순간이 좋았습니다.
조금 취해서 말이 많아질 때,
상대의 반응을 기다릴 때,
자기가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 알아챈 것 같은 순간.
홍상수 영화의 배우들은 종종 ‘연기를 안 하는 것 같다’는 평가를 듣는데, 저는 오히려 그런 자연스러움을 만드는 데 상당히 정교한 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과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연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김민희는 좋았습니다.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이건 사생활의 옳고 그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배우를 보는 제 감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 배우가 자신의 연기 경력에서 상당히 좋은 시기에 도달했는데, 그 연기를 연기로만 이야기하기가 어려워진 상황.
그게 아쉬웠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배우를 보고 싶은데 배우를 보는 순간 다시 현실의 사람이 따라 들어옵니다.
배우와 사람을 분리하겠다는 시도가 여기에서도 또 실패합니다.
어쩌면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실패를 반복시키는 영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영화는 좋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누구의 편인지 판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영화가 얼마나 솔직한지에도 점수를 매기고 싶지 않습니다.
감독과 배우의 개인적인 선택에 대해 이 글에서 옳고 그름을 선언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런 건 각자가 판단하면 됩니다.
저는 영화를 봤고,
보다가 현실을 떠올렸고,
현실을 잊으려다가 실패했고,
그러다 어느 순간 그냥 화면 안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결국 제가 원래 홍상수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가 다시 남았습니다.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는 순간.
그 말 때문에 사람이 갑자기 우스워지고,
처량해지고,
끔찍해지고,
또 조금은 이해되는 순간.
이번에는 그 말들이 이전보다 훨씬 무겁게 들렸습니다.
영화 밖의 현실이 너무 가까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보고 난 뒤에도 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고백이었는지,
변명이었는지,
자기합리화였는지,
그 세 가지가 전부였는지.
다만 하나는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작품만 보겠다고 시작했고,
끝내 그렇게 보지 못했습니다.
그 실패가 이 영화를 망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실패까지 포함해서 이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좋았습니다.
아주 좋았습니다.
이 글은 볼까pick 운영자의 개인적인 감상과 의견입니다. 작품 페이지의 「호불호 정리」는 찬반 양쪽을 균형 있게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칼럼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