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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기행』, 좋은 배우 넷을 태우고도 운전을 못 한 영화

짜증은 인물 때문이 아니라 영화를 만든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복수하기도 전에 제 인내심부터 죽더군요

2026년 10월 7일운영자 개인 의견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짜증이 날 수 있습니다.

악역이 너무 악랄해서 짜증이 날 수도 있고, 주인공이 답답해서 속이 터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짜증은 때로 영화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관객의 감정을 영화 안으로 끌어당겼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경주기행』을 보면서 느낀 짜증은 그런 종류가 아니었습니다.

영화 속 인물에게 화가 난 게 아니라 영화를 만든 방식에 짜증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꽤 큽니다.

『경주기행』은 막내딸을 잃은 엄마와 세 딸이 범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 이연. 이 정도 배우들이 한 가족으로 모여 복수극을 찍는다고 하면 적어도 배우 보는 재미 정도는 기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영화는 초반부터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네 사람이 계속 부딪치고, 말다툼하고, 화를 내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가족이 함께 복수를 하러 간다고 해서 네 명 모두가 같은 감정일 수는 없겠죠. 각자의 상처와 입장이 다르고, 그래서 갈등이 생기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갈등이 있다고 해서 모든 장면을 고성으로 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인물들이 서로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과, 사람들이 계속 땍땍거리게 만드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경주기행』은 그 차이를 별로 고민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셋째 딸 캐릭터는 초반부터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합니다.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는 압니다.

아니,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더 문제였습니다.

‘아, 나중에 저 행동을 설명할 무언가가 나오겠구나.’

‘지금 저렇게까지 만드는 걸 보니 뒤에서 한번 뒤집으려는 모양이구나.’

영화가 인물을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작가가 설치해 둔 장치를 보여 줍니다.

캐릭터 뒤에 작가가 서 있는 게 보이는 순간부터 관객은 이야기를 보는 게 아니라 각본의 계산을 보기 시작합니다.

저 인물이 왜 저러지?

가 아니라,

작가가 쟤를 왜 저렇게 만들었지?

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 순간 캐릭터는 사람이 아니라 복선이 됩니다.

물론 후반을 위한 빌드업이었다는 건 압니다.

문제는 빌드업은 관객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좋은 복선은 나중에 돌아봤을 때 보입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경주기행』의 복선은 등장하자마자 손을 흔듭니다.

“저 복선이에요. 나중에 기억하세요.”

그러니 놀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장치를 위해 한참 동안 짜증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만 남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 가족의 갈등을 상당 부분 ‘시끄러움’으로 표현합니다.

이 대목에서 예전에 봤던 『미씽: 사라진 여자』가 생각났습니다.

그 영화에서도 저는 비슷한 피로감을 느꼈습니다. 인물들이 감정적으로 극한 상황에 있다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감정을 계속 고성과 울음과 격앙된 대사로 표현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감정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제 쪽의 감각이 무뎌졌습니다.

누군가 계속 소리를 지르면 처음에는 긴장합니다.

계속 지르면 피곤해집니다.

더 계속 지르면 아무렇지도 않아집니다.

영화의 감정도 똑같습니다.

100이라는 감정을 보여 주려면 그 앞에 20도 있고 40도 있고 60도 있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100으로 시작해서 계속 100이면 그건 강렬한 영화가 아니라 볼륨 조절에 실패한 영화입니다.

『경주기행』도 제게는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하면 이상하게 다른 문제로 받아들일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미리 말하고 싶습니다.

여자 네 명이 주인공이라서 싫은 게 아닙니다.

여성 캐릭터가 많이 나와서 시끄러운 것도 아닙니다.

대본이 그렇게 쓴 겁니다.

남자 넷을 데려다 놓고 똑같이 소리 지르고 싸우게 만들었어도 똑같이 짜증 났을 겁니다.

좋은 여성 서사는 여성 인물을 무조건 선량하거나 우아하게 그려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찌질할 수도 있고, 이기적일 수도 있고, 짜증 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짜증조차 인물을 이해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경주기행』의 경우에는 인물의 결함을 보고 있다는 느낌보다 극적 상황을 만들기 위해 인물들이 계속 끌려다닌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범인의 얼굴이 드러납니다.

이건 아주 후반의 대형 반전도 아닙니다. 제법 초반에 공개됩니다.

아마 영화는 그 얼굴이 등장하는 순간 관객에게 한 번쯤 놀라움을 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스토리 속 범인의 정체가 충격적이라기보다는, 그 역할을 맡은 ‘배우가 누구인가’를 이용한 카드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전까지 영화가 쌓아 놓은 짜증이 상당합니다.

그래서 유명 배우 얼굴이 나왔다고 해서 갑자기 영화가 흥미로워지지는 않았습니다.

“어, 이 배우가 나오네.”

딱 그 정도였습니다.

배우의 등장이 서사의 충격으로 이어지려면 그 전까지 이야기가 관객을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미 캐릭터들의 말다툼과 너무 티 나는 빌드업에 진이 빠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얼굴 공개 자체도 별 힘을 못 씁니다.

그리고 저는 이 영화의 기본 설정에도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딸을 죽인 살인범이 출소하고, 엄마와 세 딸이 그를 납치해 복수하러 간다는 이야기.

글로만 적으면 자극적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자극적인 설정과 좋은 설정은 다릅니다.

저에게는 시작부터 상당히 인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특히 죽은 막내의 이름이 ‘경주’이고, 가족이 향하는 곳도 ‘경주’라는 설정.

영화는 아마 이 겹침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감탄하기보다 먼저 작가의 의도가 보였습니다.

‘아, 그래서 제목이 경주기행이구나.’

그 이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름을 굳이 ‘경주’로 지어 놓은 것 자체가 너무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징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스며들 때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경주’는 상징이라기보다 제목을 성립시키기 위해 미리 끼워 맞춘 설정처럼 느껴집니다.

사람 이름도 경주.

가는 곳도 경주.

그래서 『경주기행』.

너무 곧습니다.

너무 곧아서 오히려 얄팍합니다.

저는 이런 설정을 보고 ‘영리하다’고 느끼기보다 “굳이?”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 놓은 설정이 재미로도 이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복수극으로 보기에는 긴장이 약하고,

코미디로 보기에는 웃기지 않고,

가족극으로 보기에는 인물들의 충돌이 지나치게 기능적입니다.

장르를 여러 개 섞었다기보다 어느 장르의 장점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쪽에 가깝습니다.

특히 코미디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영화가 웃기려고 만든 장면들이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

알겠는데 안 웃깁니다.

저는 블랙코미디에서 꼭 배를 잡고 웃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너무 끔찍해서 오히려 웃음이 새어 나오는 순간, 사람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을 너무 태연하게 하는 데서 생기는 기묘한 우스움, 비극과 일상이 어처구니없이 붙어 있을 때 생기는 웃음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경주기행』에서는 그런 웃음을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심각한 장면과 우스운 장면이 충돌하면서 블랙코미디가 되는 게 아니라, 심각하다가 갑자기 농담하고 다시 심각해지는 식입니다.

톤이 섞이는 것과 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다릅니다.

무엇보다 개연성이 계속 걸립니다.

블랙코미디라고 해서 개연성이 없어도 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황당한 상황일수록 영화 내부의 논리는 더 정확해야 합니다.

관객이 “말도 안 돼”라고 웃는 것과 “말이 안 되는데?”라고 의심하는 건 전혀 다른 반응입니다.

앞의 것은 코미디고, 뒤의 것은 각본의 구멍입니다.

『경주기행』을 보면서 저는 후자를 너무 자주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진행될수록 복수가 성공할지 실패할지가 궁금한 게 아니라, 이 이야기를 왜 이런 방식으로 끌고 가는지가 신경 쓰였습니다.

물론 배우들은 잘합니다.

그건 오히려 이 영화에서 별 의미가 없는 칭찬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정은이 못할 리 없고, 공효진이 생활감 있는 연기를 못할 리 없고, 박소담과 이연 역시 자기 몫을 합니다.

그런데 좋은 배우 넷을 한 차에 태웠다고 좋은 로드무비가 되는 건 아닙니다.

운전은 각본이 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경주기행』의 문제는 배우가 아니라 운전기사였습니다.

목적지는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가는 길이 너무 엉망입니다.

급정거하고, 다시 출발하고, 옆 사람과 싸우고, 길을 잘못 들었다가 농담 한번 던지고, 다시 심각해집니다.

관객은 뒷좌석에 앉아서 그걸 계속 견뎌야 합니다.

영화가 끝났을 때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통쾌하지도 않았습니다.

웃기지도 않았습니다.

놀랍지도 않았습니다.

남은 건 피로감뿐이었습니다.

복수극을 보고 이렇게까지 아무런 카타르시스가 없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가족의 소란이 현실적인 가족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고, 서로 상처 입은 사람들이 제각각 슬픔을 견디는 과정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겁니다.

저에게는 아니었습니다.

상처가 깊어서 시끄러운 사람들이 아니라, 영화가 필요할 때마다 시끄러워지는 인물들처럼 보였습니다.

그 차이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영화 초반부터 짜증이 났습니다.

조금 지나니 그 짜증이 피로로 변했습니다.

범인의 얼굴을 공개했을 때도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 뒤로 영화가 무슨 패를 꺼내든 이미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범인에게 복수하기도 전에 제 인내심부터 먼저 죽인 셈입니다.

그래서 제 점수는 아주 간단합니다.

부정 10.

긍정 0.

좋았던 점을 억지로 하나 찾아 균형을 맞출 생각도 없습니다.

모든 영화평이 공평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어떤 영화는 보고 나서 생각할 거리를 남기고,

어떤 영화는 장면을 남기고,

어떤 영화는 음악을 남깁니다.

『경주기행』이 제게 남긴 건 하나입니다.

아, 시끄러웠다.

이 글은 볼까pick 운영자의 개인적인 감상과 의견입니다. 작품 페이지의 「호불호 정리」는 찬반 양쪽을 균형 있게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칼럼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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