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거탑, 나는 아직도 김명민보다 장준혁이라는 이름이 먼저 나온다
옳은 사람에 관한 드라마가 아니라, 원하는 것이 너무 많았던 사람에 관한 드라마
살면서 좋아했던 드라마를 떠올리라고 하면 꽤 여러 작품이 생각납니다.
재미있게 본 작품도 많고, 당시에는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가 몇 년 지나니 줄거리조차 흐릿해진 드라마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얀거탑』은 따로 분류됩니다.
좋아했던 드라마라기보다, 그냥 제 안에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있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한국 드라마 중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저는 아직도 이 작품입니다.
원탑.
취향이 바뀌고, 드라마를 보는 방식도 달라지고, 요즘처럼 빠른 전개에 익숙해진 뒤에도 이 순위는 잘 안 바뀝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를 이야기하려고 하면 배우 김명민보다 먼저 다른 이름이 튀어나옵니다.
장준혁.
배우가 캐릭터를 연기했다기보다 어느 순간 배우의 이름이 캐릭터 뒤로 밀려나 버린, 제가 기억하는 몇 안 되는 경우입니다.
김명민이 장준혁을 연기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얀거탑』을 떠올릴 때의 감각은 조금 다릅니다.
그냥 장준혁이라는 인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야망이 너무 커서 자신의 몸보다 먼저 병원을 집어삼키려 했고, 자존심이 너무 세서 패배를 인정하는 대신 세상 전체를 상대로 싸우려 했던 사람.
저는 그 인간이 좋았습니다.
좋은 사람이라서 좋아한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성공에 미친 사람을 이렇게 매력적으로 만들어도 되는 걸까
장준혁은 편안하게 좋아할 수 있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목표가 생기면 사람을 이용하고, 필요하면 정치도 하고, 자신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그만큼 오만합니다.
그런데 그 오만이 허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게 이 인물을 무섭게 만듭니다.
실제로 잘합니다.
실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자신감은 허세와 확신 사이에서 아주 위험하게 움직입니다.
“제가 할 수 있다고 말한 수술에 한해서는 가정도 없고, 만약도 없습니다.”
이 말을 현실에서 누가 한다면 꽤 재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장준혁이 하면 이상하게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동안 자신이 쌓아 올린 시간과 실력이 그 문장을 받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하얀거탑』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도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라는 생각을 버려. 조건 없어, 무조건이야. 쉬지 말고, 놓치 말고 끝까지 붙어. 그럼 결국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
아마 제가 장준혁을 좋아했던 이유도 이 문장 안에 상당 부분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요즘 흔히 말하는 따뜻한 위로와는 거리가 멉니다.
힘들면 쉬어도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잘되지 않아도 괜찮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마저 사치처럼 잘라 버립니다.
그냥 붙잡으라고 합니다.
끝까지.
될 때까지.
상당히 무식하고, 지독하고, 어쩌면 위험한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말에 약합니다.
무언가를 정말 가지고 싶은 인간의 눈빛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장준혁에게 성공은 욕망이 아니라 거의 생존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들여다보면 너나 나나 죽을 힘 다해 안 떨어지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건 똑같애”라는 그의 말도 오래 남았습니다.
『하얀거탑』에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 누구도 여유롭지 않습니다.
교수도 불안하고, 원장도 불안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도 자기 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합니다.
모두 높은 곳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정작 그 안에서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난간을 붙잡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그 모습을 꽤 잔인하게 보여줍니다.
병원인데, 어째 사람보다 정치가 더 많이 보인다
『하얀거탑』의 재미는 단순한 의학 드라마의 재미와는 조금 다릅니다.
수술 장면이 긴장감을 만들기도 하지만 제가 진짜 재미있게 봤던 건 사람이 사람을 움직이는 방식이었습니다.
누구 편에 설 것인가.
누구에게 빚을 질 것인가.
지금 웃어야 할 사람은 누구이고, 지금 절대로 속내를 보여줘서는 안 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표 하나.
자리 하나.
말 한마디.
밥 한 끼.
그런 것들이 사람의 미래를 바꿉니다.
그래서 우용길 같은 인물이 툭툭 던지는 말들이 그렇게 재미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좋은 기회라는 건, 말 그대로 누가 봤기 때문에 절대 좋은 기회가 아닙니다.”
이 드라마의 세계를 아주 잘 설명하는 말입니다.
『하얀거탑』에서 공짜로 떨어지는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누군가 주는 호의에는 이유가 있고, 누군가 갑자기 가까워지면 계산할 것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악수를 하면서 상대 손을 잡는 게 아니라 상대가 가진 표의 숫자를 셉니다.
잔인한데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웃긴 건, 그렇게 계산하며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어떻게든 올라가면 편해질 것 같아서 올라왔는데, 올라오고 나니 지켜야 할 게 더 많아집니다.
민충식의 “센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센 놈”이라는 말도 그래서 기억에 남습니다.
『하얀거탑』에서 권력은 왕관이라기보다 계속 뛰어야 작동하는 러닝머신 같습니다.
한 번 올라갔다고 끝이 아닙니다.
멈추면 떨어집니다.
그러니 다들 죽어라 뜁니다.
장준혁이 특별한 괴물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주변을 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장준혁만 욕심이 많은 게 아닙니다.
다만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욕망을 숨기는 능력이 부족하고, 실력이 너무 뛰어나고, 결정적으로 멈출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최도영이 옆에 있어서 장준혁이 더 선명했다
장준혁 혼자였다면 이 드라마가 이만큼 좋았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장준혁 곁에는 최도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단순한 선과 악으로 갈라지지 않습니다.
최도영은 의사로서 지켜야 할 원칙을 바라보고, 장준혁은 의사로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둘의 충돌이 재미있습니다.
한쪽이 완전히 틀렸다면 싸움은 금방 끝납니다.
그런데 둘 다 자기 논리가 있습니다.
환자에게 감정을 이입하다 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정말 인간적인 것인가.
반대로 냉정하게 성공 가능성과 결과만 따지는 것이 정말 프로다운 것인가.
의사는 어디까지 싸워야 하는가.
그리고 언제 멈춰야 하는가.
『하얀거탑』은 이런 질문을 꽤 오래 붙잡고 갑니다.
오경환의 대사 중 제가 특히 좋아하는 것들도 이 지점에 있습니다.
의사는 환자의 몸을 질병과 싸우는 전쟁터로 사용할 수 있지만, 전쟁에서 패배했을 때 상처 입는 것은 결국 환자의 몸이라는 말.
의사가 기적을 바라며 끝까지 싸우는 것이 언제나 숭고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
이런 대사들이 장준혁의 확신과 맞부딪치면서 드라마가 단순한 성공담에서 멀어집니다.
장준혁은 늘 이기는 방법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세상은 결국 가장 잔인한 질문을 던집니다.
모든 싸움에는 이기는 방법이 있는가.
그렇지 않은 싸움도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강한 사람이 “왜 이렇게 인생이 힘든 거냐”고 말할 때
제가 장준혁을 좋아하면서도 이상하게 가장 마음이 가는 순간은 그가 자신만만할 때보다 무너질 때입니다.
“왜 이렇게 인생이 힘든 거냐.”
장준혁 같은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누구보다 머리가 좋고, 수술도 잘하고, 야망도 있고, 쉽게 포기하지도 않는 사람이.
그런데도 인생이 힘듭니다.
그때 최도영은 대단한 철학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쓸데없는 데 신경을 쓰니 힘든 거라고, 의사로서만 충실해 보라고 합니다.
참 쉬운 말입니다.
그리고 장준혁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입니다.
그는 이미 의사로서만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정받아야 하고, 올라가야 하고, 이겨야 하고,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증명해야 합니다.
어쩌면 장준혁이 평생 싸운 상대는 다른 교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자신도 못 눌러서 어떻게 남을 이겨?”
강희재가 했던 이 말 역시 그래서 오래 남습니다.
장준혁은 수많은 사람을 이겼습니다.
그런데 자기 욕망의 속도는 끝내 이기지 못했습니다.
너무 빨랐습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이미 머릿속에서 끝내 버리고, 다음 승리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 속도가 결국 장준혁을 장준혁답게 만든 힘이면서 동시에 그를 파괴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보고 있으면 미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비극은 대개 약한 사람이 넘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 강한 사람이 자기 힘을 멈추지 못해서 무너지는 이야기일 때 더 오래 남습니다.
장준혁이 그렇습니다.
다섯 번을 봤는데도 다시 볼 수 있는 이유
제가 『하얀거탑』을 정속으로 다섯 번 정도 봤던 것 같습니다.
요즘 같으면 놀라운 일입니다.
배속도 아니었습니다.
그 긴 호흡을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이미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 알고, 결국 어디까지 가는지도 아는데 다시 봤습니다.
그 정도면 줄거리가 궁금해서 본 것은 아닐 겁니다.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장준혁을 보고 싶었고, 최도영을 보고 싶었고, 우용길이 능글맞게 말을 돌리는 것도 듣고 싶었고, 오경환이 꼿꼿하게 버티는 모습도 보고 싶었습니다.
연기를 보는 맛이라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잘 쓴 대본을 잘하는 배우들이 붙잡으면 대사가 정보 전달을 넘어 사람의 성격이 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장면보다 목소리가 먼저 기억나는 작품이 있습니다.
제게 『하얀거탑』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기억도 분명 섞여 있을 겁니다.
당시 사랑하던 사람과 같이 보면서 극찬했던 드라마니까요.
좋은 작품과 좋은 시절이 우연히 겹치면 기억은 조금 불공평해집니다.
작품만 떠올리려고 해도 그때의 공기까지 따라옵니다.
같이 재미있다고 떠들던 말, 다음 회를 기다리던 기분, 장준혁을 보며 흥분했던 시간이 어딘가에 같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얀거탑』을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이유가 정말 드라마가 완벽해서인지, 그때의 제가 좋았기 때문인지는 이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뭐,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겠죠.
인생 드라마라는 건 원래 작품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니까요.
작품과 그 작품을 보던 시절이 같이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얀거탑』 이야기가 나오면 저는 김명민부터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장준혁부터 나옵니다.
그 이름만으로 이미 꽤 많은 장면이 따라옵니다.
수술실의 눈빛.
자신만만한 목소리.
지기 싫어 이를 악문 얼굴.
끝까지 포기하지 못했던 사람.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했던 그 말.
어떻게 할지 고민하지 말고, 조건 따지지 말고, 쉬지 말고, 놓지 말고 끝까지 붙으라는 말.
지금의 제가 그 말을 전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살다 보니 놓아야 하는 것도 있고, 포기해야 다음으로 갈 수 있는 일도 있다는 걸 압니다.
끝까지 붙들었다고 언제나 내 것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알면서도 저는 여전히 그 말을 좋아합니다.
아마 성공의 법칙이라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 간절하게 무언가를 원했던 인간의 기세가 좋아서일 겁니다.
『하얀거탑』은 저에게 그런 드라마입니다.
옳은 사람에 관한 드라마가 아니라, 원하는 것이 너무 많았던 사람에 관한 드라마.
잘난 인간이 얼마나 높이 올라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이 자기 욕망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드라마.
그리고 그 한가운데 장준혁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제 한국 드라마 원탑입니다.
다섯 번을 봤는데 또 보라고 하면요?
아마 볼 것 같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정속으로요.
장준혁은 배속으로 보기엔 너무 아까운 인간이니까요.
이 글은 볼까pick 운영자의 개인적인 감상과 의견입니다. 작품 페이지의 「호불호 정리」는 찬반 양쪽을 균형 있게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칼럼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