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걷다 보면 언젠가는 나에게 도착한다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오래전 영화 『와일드』를 보고 나서 참 많이 걸었습니다.
어디로 가야겠다는 목적지는 없었습니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거창한 결심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걷고 싶었습니다. 어떤 날은 쉬지 않고 여덟 시간 가까이 걸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발은 무슨 죄였나 싶지만, 그때는 이상하게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좋은 영화 한 편을 보고 할 수 있는 일이야 많습니다.
누군가는 감상평을 쓰고, 누군가는 OST를 찾아 듣고, 누군가는 감독의 전작을 찾아봅니다.
저는 걸었습니다.
아마 그것만으로도 『와일드』에 대한 리뷰는 절반쯤 끝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가 끝났는데 몸이 움직이고 싶어졌다는 것. 그것도 어디론가 빨리 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내 두 발로 가고 싶어졌다는 것.
그런 영화는 흔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망친 사람의 여행
『와일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엄마를 잃고, 결혼생활이 무너지고, 마약과 충동적인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망가뜨리던 셰릴 스트레이드가 어느 날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PCT를 걷기로 합니다. 등산 경험도 거의 없는 사람이 혼자서 배낭을 짊어지고 천 마일이 넘는 길에 들어섭니다. 영화에서 리즈 위더스푼이 연기한 셰릴이 걸은 실제 구간은 약 1,100마일, 대략 1,770km 정도입니다. PCT 전체 길이가 4천km를 훌쩍 넘기 때문에 종종 두 숫자가 섞여 알려지기도 합니다.
1,770km도 충분히 미친 거리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걷는 일을 몇 번 반복해야 하는 거리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와일드』를 보고 있으면 그 숫자가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몇 킬로미터를 정복했느냐가 아닙니다.
셰릴에게 길은 도전 과제가 아니라 일종의 형벌에 가깝습니다.
등에 멘 배낭은 터무니없이 무겁고, 신발은 발을 망가뜨리고, 물은 떨어지고, 길은 끝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준비라고 부를 만한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처음부터 강한 사람이 대단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완수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엉망이 된 사람이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한 발을 내딛는 이야기입니다.
성공담이라기보다 복구기입니다.
사람은 왜 힘들 때 걷고 싶어질까
저 역시 이 영화를 보던 당시 조금 방황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스스로 방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의외로 자기 인생이 흔들리고 있을 때 그 사실을 제일 늦게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걸었던 것 같습니다.
작정하고 걸었습니다.
걷는 일이 좋은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걸을 때는 삶의 속도가 강제로 느려집니다.
자동차를 타면 몇십 킬로미터가 금방 사라지고, 지하철을 타면 도시 하나를 순식간에 건너갑니다. 그런데 두 발로 움직이면 모든 거리가 정직해집니다.
1km는 정확히 1km만큼 멉니다.
오르막은 요령을 부린다고 평지가 되지 않고, 지친다고 목적지가 가까워지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걷는 동안에는 묘하게 세상이 단순해집니다.
다음 발을 내딛으면 됩니다.
그다음에도 한 발.
또 한 발.
우리가 사는 동안 붙들고 있는 문제들은 대부분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노력한 만큼 돌아오지 않고, 사람의 마음은 계산할 수 없고, 상실은 해결되지 않으며, 후회는 취소 버튼이 없습니다.
그런데 걷기에는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규칙이 있습니다.
계속 걸으면 조금이라도 앞으로 갑니다.
어쩌면 무너진 사람에게는 그런 종류의 단순함이 필요할 때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에서는 셰릴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저는 셰릴에게 엄청난 감정이입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정도였습니다.
‘와, 진짜 힘들었겠다.’
육체적으로 말입니다.
그 무거운 배낭을 지고 사막과 산을 혼자 걷는 모습을 보면서 고생스럽겠다고 생각했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원작 『와일드』를 읽고 나서 알았습니다.
제가 영화에서 셰릴을 꽤 많이 놓쳤다는 것을.
책 속 셰릴은 영화보다 훨씬 불편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훨씬 솔직합니다.
엄마의 죽음 이후 자신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결혼생활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마약과 섹스와 자기파괴적인 선택들 속에서 얼마나 엉망으로 살았는지를 별로 예쁘게 포장하지 않습니다. 원작은 1995년의 약 1,100마일 여정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그 길 위에 오르기까지 셰릴의 삶이 어떻게 부서졌는지를 함께 보여 줍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조금 놀랐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설명할 때 슬쩍 변호사가 됩니다.
상황이 그랬고, 상대방도 잘못했고, 나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셰릴은 그런 변명을 상당 부분 걷어냅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고, 이런 짓을 했고, 그것은 분명 내가 한 일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와일드』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게 됩니다.
이 책은 ‘어떻게 인생을 다시 시작할 것인가’에 관한 책이기 전에,
‘망가진 과거의 나를 어떻게 내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관한 책입니다.
용서는 없었던 일이 되는 게 아니다
책을 읽고 가장 오래 남은 것은 결국 ‘용서’였습니다.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용서.
우리는 종종 과거를 극복한다는 말을 쉽게 합니다.
과거를 잊는다.
새로운 사람이 된다.
다시 시작한다.
듣기에는 근사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렇게 깔끔하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습니다.
했던 일은 했던 일이고, 잃어버린 사람은 돌아오지 않으며, 상처를 준 사실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셰릴 역시 길을 다 걷는다고 과거가 삭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엄마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망가진 결혼생활이 복구되는 것도 아니고, 과거의 선택들이 없었던 일이 되지도 않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그 과거를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이 차이가 참 좋았습니다.
『와일드』는 상처를 극복하면 새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고 말하는 값싼 힐링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그 상처도 나고, 그 실수도 나고, 그렇게 형편없이 굴었던 인간도 나라는 사실을 인정한 뒤에야 비로소 다음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길은 셰릴의 죄를 씻어 주지 않습니다.
그녀가 자기 삶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줄 뿐입니다.
저는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좋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화에는 적어 둔 명대사가 없었다
저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마음에 드는 대사가 나오면 자주 메모합니다.
나중에 다시 보면 작품 전체는 기억나지 않아도 그 문장 하나 때문에 당시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와일드』는 적어 둔 대사가 하나도 없습니다.
없었다기보다 못 적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냥 봤습니다.
영화 속 셰릴이 걷는 모습을 계속 봤습니다.
대사가 아니라 리듬으로 기억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발을 내딛는 소리.
거친 숨소리.
사막의 빛.
배낭의 무게.
끝없이 이어지는 길.
『와일드』가 저에게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원작보다 많은 것을 생략합니다. 1시간 55분 안에 한 사람의 인생과 3개월 가까운 여정을 함께 담으려니 당연한 일입니다. 장마르크 발레 감독의 영화는 원작의 모든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파편적인 회상과 길 위의 현재를 빠르게 교차시키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래서 책을 먼저 읽은 사람에게는 부족할 수 있고, 영화를 먼저 본 사람은 셰릴의 행동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영화의 약점인 동시에 장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셰릴의 머릿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영화는 셰릴 옆에서 걷게 합니다.
하는 일이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둘 중 하나를 고르고 싶지 않습니다.
책을 읽고 다시 걷고 싶어졌다
책을 덮은 뒤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황당하게도 이것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번 걸어가 볼까.
찾아보니 대략 400km 전후.
셰릴이 걸었던 거리와 비교하면 훨씬 짧습니다.
그런데 지도에서 숫자를 보는 것과 실제로 그 길을 걷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며칠이면 되겠지, 같은 낭만적인 계산을 하다가 제 체력과 무릎과 현실을 생각했습니다.
음.
자전거부터 알아볼까요.
사람의 결심은 늘 위대하고 관절은 현실적입니다.
그래도 다시 걷고 싶다는 생각만큼은 진짜였습니다.
영화를 봤을 때도 걸었고,
책을 읽고 나서도 걷고 싶어졌습니다.
이 정도면 『와일드』라는 작품이 저에게 무엇을 했는지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예전에는 인생에 길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줄 알았습니다.
계획을 잘 세우고, 현명한 선택을 하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제대로 사는 것이고, 방황하는 사람은 어딘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대부분은 가끔 길을 잃습니다.
문제는 길을 잃는 것이 아니라, 이미 길을 잃었는데도 계속 제대로 가고 있는 척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셰릴은 아주 멀리 돌아갑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멀리 떠난 뒤에야 자기 자신에게 조금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와일드』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대단한 자연도, 극한의 도전도 아닙니다.
‘계속 간다’는 아주 단순한 태도입니다.
오늘 해결되지 않아도 걷습니다.
아직 용서하지 못해도 걷습니다.
여전히 엄마가 그립고, 자신이 싫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어도 일단 다음 발을 내딛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면 꽤 멀리 와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어쩌면 그 정도인지 모르겠습니다.
내 인생영화
그래서 누군가 『와일드』가 어떤 영화냐고 묻는다면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한 여자가 혼자 걷는 영화.
엄청나게 고생하는 영화.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오래 마음에 남는 영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특히 지금 자기 인생이 어디쯤 와 있는지 잘 모르겠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권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 영화를 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영화 한 편이 인생을 고쳐 준다면 극장 옆에 정신과도 철학과도 필요 없겠죠.
다만 가끔 영화는 사람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합니다.
답을 주지는 못해도 움직이게는 합니다.
저에게 『와일드』가 그랬습니다.
오래전 이 영화를 보고 저는 여덟 시간 가까이 걸었습니다.
왜 그렇게 걸었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마 그때의 저는 어디론가 가고 싶었던 게 아니라,
어디에서든 빠져나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걷는 동안 아주 조금씩 알게 되었겠죠.
빠져나가는 것과 도착하는 것은 사실 같은 방향일 수도 있다는 것을.
영화를 다시 볼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책을 읽은 뒤라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많이 보일 겁니다.
그래도 다 보고 나면 또 걷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그때처럼 여덟 시간까지는 아니어도 좋습니다.
갈 곳은 없어도 됩니다.
사람이 반드시 목적지가 있어야 걷는 것은 아니니까요.
때로는 걷는 동안에야 목적지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아주 오래 걷고 난 뒤에 도착하는 곳이
결국 자기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와일드』.
여전히 제 인생영화 중 하나입니다.
이 글은 볼까pick 운영자의 개인적인 감상과 의견입니다. 작품 페이지의 「호불호 정리」는 찬반 양쪽을 균형 있게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칼럼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